[교단일기]학교 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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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학교 매점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0.10.2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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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모 현대청운중 교사
이 곳은 어디일까? 생활의 낙, 생필품 공급처, 한 끼를 해결 가능한 곳, 운영하는 사람에게는 지옥이지만 이용하는 사람에게 천국인 장소는? 바로 매점이다. 학생회장 선거 후보자의 제1순위 공약일 정도로 매점은 학생들의 큰 관심사다. 이 곳에서 학생들은 허기를 채우고, 인생의 진리를 깨우친다.

매점 진리 (1)수요와 공급. 돈이 있어야 이용할수 있다는 조건이 있지만 일단 없는 것이 없다. 간식과 음료는 당연히 존재하고, 학용품과 준비물에 슬리퍼, 휴지 등 생필품까지 판다. 특히 첫시험 때는 컴퓨터용 싸인펜이 불티나게 팔린다. 여중, 여고에는 생리대까지 판다. 미술시간은 다가오고, 스케치북을 안가져와서 혼 날까봐 걱정인데 매점에 붙여진 ‘스케치북 3천원’ 안내문을 확인하는 순간 매점 아주머니가 성녀, 천사로 보인다.

매점 진리 (2)힘이 최고. 중·고등학교 매점에서는 3학년이 나이, 학년, 덩치를 앞세워 후배들 앞에서 새치기를 많이 한다. 1, 2학년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3학년이 사라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어? 호랑이 선생님이 나타났다! 못된 선배들을 물리치고, 우리에게 질서와 평화를 안겨주실거야.” 역시 3학년들은 모세의 기적처럼 쫙 갈라지고, 그 사이로 선생님 유유히 등장한다. 그러나 웬 걸? 선생님은 자기 간식만 구입하고 사라진다. 양이 됐던 3학년은 다시 늑대 무리가 되어 매점을 지배한다.

매점 진리 (3)갑질이 계속되는 이유. 필자가 고3 시절, 내 친구가 후배들 앞에서 새치기를 했다. 이 녀석은 1학년 시절 학급회의 시간에 “선배들의 횡포가 너무 심합니다. 매점에서, 스쿨버스에서 너무합니다.”라는 발언을 했던 친구이다.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권력을 줘보면 된다.’는 말이 있다. 권력을 쥔 개구리는 올챙이 적 생각을 전혀 안하고, 거기에 도취되기 마련이다.

매점 진리 (4)세대는 변한다. 얼마전 TV 프로그램에서 각 연령대 대표들이 모여서 학창시절 매점을 얘기하는데, 공감대가 없어서 세대차이가 드러났다. 10대는 브이콘·신쫄이·꼬미볼·참맛후랑크, 20대는 위대한 탄생(빵)·포켓몬(빵)·불벅(햄버거)·피크닉·새콤짱·꾀돌이, 30대는 비스마르크(빵)·국찐이(빵)·밭두렁·월드컵(쥐포)·스콜·뽀빠이, 40대는 기억이 오래되어 간식이 안 떠오름, 50대는 매점이 없었음···.

매점 진리 (5)눈치 빠른 자가 생존한다. 돈 없어도 매점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친구를 따라가서 ‘한 입만’ 부탁하면 되는데, 이것도 조건이 있다. 평소 대인관계가 좋고, 누가 돈이 있는지 알아차려야하고, 친구의 기분까지 간파해야 한다. 눈치 빠른 학생은 매점에서 교사의 지갑을 털어먹는다. 평소에 엄했던 교사는 그 동안 까먹었던 평판을 여기서 만회한다.

매점은 단순한 슈퍼가 아니다. 물가상승(경제학), 주제파악(철학), 돈 계산(수학), 처세술(진로), 인파를 버티는 체력(체육) 등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역시 학교는 모든 것이 교육적이다. 김경모 현대청운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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