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성수대교 붕괴사고 26주기, 아픔을 마주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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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성수대교 붕괴사고 26주기, 아픔을 마주하는 방법
  • 경상일보
  • 승인 2020.10.2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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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울산 남구의회 의원

26년 전인 지난 1994년 10월21일은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일어난 날이다. 성수대교는 1979년 10월에 준공되었고, 폭 19.4m, 길이 1160m의 거버 트러스(Gerber Truss) 구조형식의 교량 이었다. 사고 당시 10, 11번 교각이 붕괴 되면서 사망 32명 부상 17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8개월 뒤인 1995년 6월29일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며 또 한 번 국민들에게 큰 아픔을 남겼다.

성수대교는 저가 덤핑수주, 허용응력 초과, 과적차량 통행, 용접불량과 같은 부실시공에다 예산부족으로 인해 완공 후 15년 동안 정밀안전진단 및 실제적인 유지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점들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처럼 연이어 일어난 대형참사는 성과만능주의의 보여주기식 정치, 잘못된 제도, 안전을 무시한 시장경제논리 중심주의와 현장의 부실시공이 원인이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 참사들 이후로 한강의 교량들은 정밀안전진단에 들어갔고 성수대교는 더 넓고 튼튼한 다리로 재건됐다.

삼풍백화점 사고 이후에는 전국의 모든 건물에 대해 안전평가가 실시되었고, 대규모 재난에 대한 대처 매뉴얼 등이 확립됐다.

삼풍백화점 자리에는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세워졌고, 성수대교 희생자를 위한 위령비는 일부러 찾아가려고 작정해도 가기 힘든 곳에 있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의 실수가 만들어낸 비극에 대한 기억을 봉인해 버렸다. 그것이 우리가 우리의 아픔을 마주하는 방법이었다.

사고 원인은 달랐지만 빌딩 붕괴와 대규모 인명참사의 공통점을 가진 세계무역센터를 빼놓을 수 없다.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던 2001년 9월11일 월드트레이드센터에 테러가 일어났던 현장은 많은 논의 끝에 희생자와 사고 당시 구조에 참여하다 희생된 소방대원, 경찰관, 구급대원 및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폭발이 있었던 지표의 지점인 그라운드제로에 만들어진 2개의 풀에서는 겨울에도 얼지 않도록 약품처리를 한 물이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아픔을 어루만지 듯 폭포처럼 흐르고,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긴 동판이 사면을 둘러싸고 있다. 9·11박물관에는 사고당시 붕괴된 건물의 잔해, 사고 당시 파손된 구급차, 희생자 및 증언자들의 음성과 영상 등 사소한 것까지 모두 박물관에 전시를 해놓았다. 이 9·11메모리얼파크와 박물관에는 미국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이 전세계가 겪은 아픔에 대한 위로와 추모를 위해 꼭 들르는 공간이 되었고, 뉴욕의 상징적인 랜드마크 장소가 되었다.

이처럼 랜드마크는 즐겁고, 기쁘고 신나는 것만 되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아픔. 후대에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해주어야 할 이야기들이 형상화되면 그것이 또 다른 의미의 랜드마크가 되는 것이다.

삼풍백화점 자리에 거대한 주상복합이 아니라 9·11메모리얼 파크와 같은 추모관과 함께 건축구조안전과 관련한 박물관이 조성되었다면, 사고 당시 성수대교의 무너진 교량일부를 그대로 보존해서 두고두고 실수를 기억하고 아픔을 잊지 않도록 하자는 의견을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어찌보면 6·25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모든 사고는 우리 스스로 저지른 잘못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대구지하철참사, 세월호참사, 포항 지진 때와 같은 사소한 시공 불량으로 인한 건물 붕괴나, 작은 것에서 부터 출발하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에 대해 끊임없이 잊지 않고 상기해 적어도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사고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또 랜드마크에 대한 한 단계 진화된 정의가 내려지지 않았을까.

우리는 더 이상 가슴 아픈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지난 참사에 대해 애써 봉인한 기억을 풀고 아픔을 마주 보아야 더 이상의 사고에 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김현정 울산 남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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