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의 反求諸己(16)]의리를 배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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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의 反求諸己(16)]의리를 배신하자
  • 경상일보
  • 승인 2021.06.1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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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철호 문학박사·인문고전평론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말 중에 의리(義理)란 것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할 때 ‘의리 있다’와 ‘의리 없다’라는 말은 하늘과 땅만큼 가치의 차이가 크다. ‘의리 빼면 시체’라든가 ‘의리의 사나이’라는 말은 사람, 특히 남자를 좋게 평가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상대적으로 나쁜 의미로 쓰이는 말이 ‘배신(背信)’이다. 우리 사회에서 ‘배신자’라는 말은 결코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가 속한 집단이든 그가 관계한 사람이든 그는 그곳에서 더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의리는 뜻과 행동을 함께 하는 것이며, 그러한 데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만약에 그가 뜻과 행동을 함께하지 않겠다거나 벗어나려고 한다면 그는 곧바로 배신자가 된다. 여기서 의리와 배신의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은 함께 하느냐 함께하지 않느냐이다. 문제는 의리에서 가장 중요한 옳고 그름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의리(義理)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며, 배신은 ‘그런 의리를 저버리는 것’이다.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의(義)의 단서라고 말했다. 수오(羞惡)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또 타인의 잘못을 미워한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수오지심은 올바름에서 벗어난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며, 올바름에 대한 지향을 의미한다. 의는 사적인 이익과 대립하는 사회정의라는 뜻이며, 자신과 타인이 정의에서 벗어나는 일을 용납하지 않는 마음이다.

공군 이중사 성추행 자살 사건의 경우, 문제의 본질에 우리나라의 왜곡된 의리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이중사가 자살하기까지 그 사실을 아는 많은 사람이 아무도 진실을 밝혀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 모두가 공범일 수도 있고 각각의 이해에 따랐을 수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의리와 배신이라는 조직문화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내부고발의 경우도 그렇다.

내부고발은 배신이 아닌데도 배신으로 취급받는 게 우리 현실이다. 내부고발은 이미 어떠한 법률적·도의적인 잘못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니 절대 비난받을 행위가 아니다. 그런데도 배신자로 낙인 찍히는 게 다반사이다.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제부터 의리를 배신하자고, 그것이 우리 사회를 올바르게 이끄는 길이라고 말이다. 송철호 문학박사·인문고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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