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의 음악이야기(191)]영국 메리여왕(Bloody Mary)과 영국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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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의 음악이야기(191)]영국 메리여왕(Bloody Mary)과 영국합창
  • 경상일보
  • 승인 2021.07.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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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천 울산대 객원교수·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피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영국 여왕 메리1세(Mary I, 1516~1558년)는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여왕(재위 1553년~1558년)이다. 부친 헨리8세와 아라곤의 캐서린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며, 본명은 메리 튜더(Mary Tudor)이다. 부친 헨리8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예쁜 공주로 자랐다. 그런데 부친이 이혼을 하고 두 번째 왕비 앤 블린과 결혼하여 이복 여동생을 낳자 메리는 공주에서 하녀로 강등됐다. 심지어 이복 여동생인 엘리자베스1세의 수발을 드는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 헨리8세의 여섯 번째 왕비 캐서린 파에 의해 겨우 공주로 복권했다. 그러다가 부친 헨리8세가 사망하자 어린 이복동생인 에드워드6세가 왕위를 계승했으나 16세에 죽고 만다.

더 이상 적장자가 없어서 메리가 영국 왕실 역사상 최초의 여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메리가 여왕에 오르자 지난 왕조에서 종교상 이유로 박해 받던 자기의 원한을 풀기 위해 가톨릭으로 복귀를 선언한다. 종교개혁을 통해 부왕 때 이미 가톨릭과 결별하고 영국 국교회가 확립된 상태에서 이제 역으로 신교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당시 성공회의 유명한 성직자인 휴 레티머 주교, 니콜라스 리들리 주교, 토머스 크랜머 대주교 등과 신자들을 체포하여 처형했다. 1549년 토머스 크랜머 대주교가 작성한 성공회 기도서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영어로 된 그 기도서를 소지하거나 사용한 자들도 처형하여 그 수가 300명이 넘었다. 이때부터 메리여왕은 ‘피의 메리(Bloody Mary)’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이 때 합창곡을 작곡하던 음악가들도 수난을 겪었다. 영어로 된 곡을 쓰지 못하게 하며 가톨릭에서 쓰는 라틴어 가사만 사용하여 작곡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그때 영국의 작곡가들은 라틴어 가사로 곡을 쓰다가 중간에 영어를 살짝 집어넣어 작곡하며 목숨을 지켰다. 지금은 자유롭지만 이때부터 영국 작곡가들에게는 라틴어로 가사를 쓰다가 영어를 가미하는 전통이 생겼다. 그래서 지금도 곡의 흐름과 가사를 읽어보면 영국 작곡가의 곡이라는 사실을 마치 표식처럼 알 수 있는 부분이 나타난다.

구천 울산대 객원교수·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추천음악= Bob Chilcott 작곡, A Little Jazz M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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