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추석은 우리 민족에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명절이다.
추석을 처음 명절로 삼은 것은 삼국시대 초기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의 3대 왕인 유리 이사금(재위 기간 24~57년) 때 두 명의 공주를 중심으로 서라벌 도성 안의 부녀자들이 두 파로 나뉘어 길쌈놀이를 벌였다. 길쌈내기는 음력 7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매일 아침부터 밤 10시경까지 이어졌는데 베를 더 많이 짜는 쪽이 이기는 방식이었다.
길쌈내기에서 진 쪽은 음식과 술을 마련해 이긴 쪽 여자들을 대접했다. 이긴 쪽이나 진 쪽 모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를 가배(嘉俳)라 한다고 기록돼 있는데, 가배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한가위’라는 단어에서 ‘가위’에 해당된다.
추석은 먹을 것도 많고, 보고 싶었던 가족들도 만날 수 있어 풍요롭고 흥이 넘치는 날이다. 추석날 아침 온 가족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차례가 끝나면 차례에 올렸던 음식으로 온 가족이 음복(飮福)을 하고 조상의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한다. 지금은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지역마다 강강술래를 비롯해 가마싸움, 거북놀이, 줄다리기, 닭 잡는 놀이, 쥐불 놓기 등 다양한 민속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추석의 풍경은 180도 달라졌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위한 ‘민족 대이동’ ‘귀성길 정체’ 등 추석을 대표하는 말들을 코로나19 시대를 대표하는 ‘비대면’이 막아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추석에는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인해 추석 연휴 기간에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추모공원을 폐쇄했고, 이용을 제한하기 위해 사전 예약제로 운영했다. 온 가족이 모이는 풍경이 보기 어려워진 만큼 직접 벌초를 하는 이도 줄어 벌초 대행 서비스 이용률이 늘었다.
귀성길 풍경도 변했다. 한국도로공사는 모든 고속도로 휴게소의 매장 내 취식을 금지하고, 포장만 허용해 북적이던 휴게소의 모습이 사라졌다. 또 그동안 명절 때마다 고속도로 통행료가 면제돼 왔지만 지난해 추석은 유료로 운영됐다.
전국 지방 곳곳에서는 ‘아들, 딸, 며느리야!,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안 와도 된다’는 일반적인 문구부터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노래 제목을 패러디한 ‘불효자는 ‘옵’니다’ 등 자녀의 고향 방문 자제를 당부하는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 추석은 델타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지속되고 있어 지난해보다 더 삭막한 모습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추석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로 가정 내 모이는 인원에 대한 제한이 없었지만 올 추석에는 가정 내 가족 모임 인원 수가 접종 완료자 포함 최대 8명까지, 미접종자와 1차 접종자의 경우엔 최대 4명까지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실제 한 카드회사가 20~65세 고객 9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번 추석 연휴를 어떻게 보낼 것이냐는 질문(복수응답)에 ‘집에서 쉬거나 여가를 즐기겠다’는 응답이 71%에 달했다. 반면 ‘가족·친지 방문’은 30%, ‘가족·친지와 외식’은 6%에 그쳤다. 코로나 이전 추석 연휴와 비교하면 ‘집에서 쉬거나 여가‘는 41% 급증했고 ‘가족·친지 방문’은 35% 급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2년 연속 추석 명절의 의미 퇴색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현재의 분위기가 고착화되어서는 안 된다.
추석은 2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우리의 삶과 함께 했다. 추석의 핵심 가치는 결실의 계절을 맞아 나를 있게 한 조상에 감사드리고,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 형제자매와 정을 나누는 것이다. 이는 오프라인에서 모였을 때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것이다. 이번 추석에 고향을 방문하지 못하더라도 추석 본연의 의미는 잊지 말자. 몸은 떨어져 있더라도 가족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현명한 추석을 보내길 바란다.
정용욱 울산 동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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