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51)]속초 향성사지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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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숙의 한국100탑(51)]속초 향성사지 삼층석탑
  • 경상일보
  • 승인 2021.09.2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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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혜숙 수필가

설악은 장엄하다. 설악은 산중 미인이다. 설악은 천변만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설악은 화엄의 바다다. 암봉 사이로 붉게 물든 단풍이 불타오르는 가을이면 설악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날, 천의 얼굴을 가진 설악으로 삼층석탑을 보러 간다.

설악동 입구 대로변에 향성사지 삼층석탑이 있다. 보물 제433호로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이다. 동해안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신라 석탑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신라 진덕여왕 7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향성사는 그 이름만 전해질 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건너편 켄싱턴 호텔 자리가 절터였을 지도 모른다. 신흥사를 향해가는 버스가 지나고 차량들도 스쳐 달린다. 비선대와 천불동 계곡을 오르는 사람들이나 비룡폭포와 울산바위로 등산을 가는 사람들도 일정에 쫓겨 바삐 지나친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 속초 향성사지 삼층석탑.
▲ 속초 향성사지 삼층석탑.

근처에는 주차할 공간도 없고 다리쉼을 할 마땅한 장소도 없다. 탑은 산속의 섬이 되어버렸다. 어디에도 향성사의 흔적은 없다. 떨어져 나온 불상 조각이나 주춧돌도 보이지 않는다. 깨어진 기와조각 하나 찾아 볼 수 없다. 길가에 버려진 듯 혼자 버텨온 탑이 대견하여 가만히 기단을 쓸어본다. 그 무거움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그나마 뒤편 계곡 너머 외설악의 준령들이 탑의 훌륭한 배경이 되어 준다. 김홍도의 ‘비선대’ 그림과 닮은 비경이다.

비 내리는 설악은 안개를 조금씩 토해낸다. 멀리 웅건한 바위 사이로 폭포가 가늘게 하늘 길을 연다. 그 옛날 탑돌이를 하던 사람들도 분명 보았을 풍광이다.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법고소리 울릴 시간이다. 그러나 자동차 소음만이 삼층석탑 주위로 내려앉는다. 우산을 쓴 채 예불을 올리듯 탑을 마주한다. 지붕돌 네 귀퉁이에 풍경을 달았던 구멍으로 빗물이 매달린다. 설악의 바람을 품은 풍경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빗속으로 버스가 지나고 빨간 승용차가 빠르게 모롱이를 돌아간다. 탑을 향해 손 한번 흔들어 주면 좋으련만.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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