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시각]산업재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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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시각]산업재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 이왕수 기자
  • 승인 2021.09.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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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왕수 사회부 차장

영국은 지난 2008년부터 일명 ‘기업살인법’을 시행하고 있다. 기업이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 기업에 의한 살인 범죄로 취급한다. 이 법은 사망사고를 낸 기업의 문을 닫게 하기 위한게 아니라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경영진을 압박하는 법이다. 영국의 근로자 10만명당 산재사망사고자는 0.88명(2017년 기준)으로 OECD 국가 중 하위 수준을 유지한다. 같은 기간 한국은 3.61명이다.

핀란드는 폭발 또는 누출사고 위험이 있는 화학업종 등을 관리하는 정부기관(투케스)을 따로 두고 있다. 약 1000곳 안팎의 사업장을 집중 관리하며 안전사고를 예방한다. 핀란드의 근로자 10만명당 산재사망자는 0.93명이다.

울산에도 사업장을 둔 솔베이그룹은 산업안전을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 전세계 145개 공장에서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약 25년간 44명의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비율로 보면 화학물질 등을 이용해 각종 제품을 생산하는 솔베이 공장 한 곳당 사고로 목숨을 잃는 근로자 수는 100년에 1.2명에 불과하다.

지난 2016년 산업안전 분야 취재를 위해 영국과 핀란드를 방문했다. 당시 ‘안전문화 바이러스를 울산 전역으로’를 주제로 총 3부, 20여회에 걸친 시리즈 기사를 내보냈다. 해외 뿐 아니라 울산을 포함한 국내 우수사례를 소개하며 산업현장의 안전 문화를 전파했다.

5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 각 사업장별로 안전 문화가 일부 정착되긴 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울산지법은 지난해 5월 근로자들의 안전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진기 해체 작업을 지시해 사망사고를 낸 건설업체 대표, 지난 2019년 11월 근로자의 추락을 방지할 안전시설을 설치하지 않아 사망사고를 낸 업체 대표에게 각각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판결 내용을 보면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울산지법이 개최한 산업재해예방 간담회에서도 산업수도 울산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울산의 인구 10만명당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관련 형사공판사건(제1심) 건수는 3.4269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전국 평균(1.1345건)의 3배를 훌쩍 넘는 수치다.

‘하인리히의 법칙’이 있다. 사망 또는 중상 같은 재해가 1번 발생하기 이전에 비슷한 원인으로 29번의 작은 재해(경상)가 발생했고, 또 그 이전에 비슷한 이유로 부상을 당할 뻔한 사건이 300번 있었을 것이라는 논리다. 하인리히가 7만5000건의 산업재해를 분석해 도출한 결론으로, 작은 위험 요인을 해소하면 중대 재해를 예방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근로자의 안전이 확보되는 국가나 기업은 산업안전을 바라보는 시각이 확연히 다르다. 넘어짐 사고를 막기 위해 평상시 계단을 오르내릴 때에도 난간을 잡도록 하는 규정을 두는 회사도 있다. 사고를 일으킬 불안 요인을 먼저 찾아 개선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고, ‘예측할 수 없는 산재사고는 없다’는 인식도 강하다.

산재는 50년 빈도, 100년 빈도 등으로 구분하는 ‘천재지변’이 아니다. ‘모든 산재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CEO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왕수 사회부 차장 wsle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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