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종전선언의 정치와 상식(常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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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종전선언의 정치와 상식(常識)
  • 경상일보
  • 승인 2021.09.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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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배 (사)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문학박사

‘종전선언’이 정쟁의 무대에 올려졌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문대통령이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출발점”이라 주장하면서다. 종전선언은 2007년 ‘10.4선언’에서 처음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후 수차례 남북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실현되지 못했다.

그런데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대선 정국에서 종전선언 문제를 다시 들고나왔으니 대통령의 ‘충심’ 설명과는 상관없이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을 만하다. 야권의 공격은 신랄하다. “정권 재창출에 눈이 어두워 대한민국 안보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 불장난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어느 나라 대통령인지 부끄럽고 황당하다.” “유엔사 해체나 주한미군철수 주장이 대번에 나올 것이다.” “북핵 해결 없이 종전선언은 없다.” 이런 언사에서 감지되는 것은 정치성 외에도 ‘지식’과 ‘역사 인식’의 과도한 결핍이다. 당장 평화협정을 맺자는 것이 아니라 70년을 이어온 휴전상태를 종식하는 ‘정치적’ 선언을 하자는 일종의 고육책일 텐데 마치 배수진을 친 모양새다. 특정 정보나 유사한 정서를 공유하지 않고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태도다. 생산적 논의를 돕기 위해 관련된 몇 가지 점을 짚어 본다.

첫째, 미국은 평화조약(peace treaty)에 관심이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미국은 1972년 여름 남북의 유엔 가입, 유엔통일부흥위원단과 유엔사 해체 등을 진지하게 검토한 바 있다. ‘7.4 남북공동선언’ 이후 ‘평화통일 3원칙-자주·평화·민족대단결’ 가운데 자주는 외세의 개입을 배제했기 때문에, 미국은 “남북 사이에 평화조약이 체결”될 때 유엔기구의 해체와 미군철수를 당연한 수준으로 받아들였다.

둘째, 미국은 유엔사 해체와 미군철수 가능성을 어떻게 대응했는가? 당연히 해체도 철수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유엔사는 미군의 남한 주둔을 국제적으로 지지하는 장치이고, 한국군 작전통제를 가능케 하는 ‘메커니즘’을 제공하며, 휴전협정의 유엔 측 당사자며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북미 소통의 유일한 창구였다. 또한, 유엔사 해체는 한국방위 목적의 일본기지 사용의 법적 근거를 제공하는 주일미주둔군협력(SOFA)을 약화시킬 것이었다. 따라서 미군은 “한국의 요청이 있거나 유엔총회가 공식화한 지속적인 안정을 위한 조건이 달성되었을 때” 철수하며, 주한미군은 미국과 대한민국 사이의 ‘양자 문제’이고, 유엔사의 지위는 안보리(미국이 거부권 가능)에 맡겨야 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셋째, 1991년 남북 유엔 동시 가입 이후 유엔사는 존재 근거를 상실했는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유엔사의 존속 여부는 미국이 선택할 문제로 남았다. 더구나 1947년 유엔총회 결의 이래 한반도에서 유엔의 목적-‘선거를 통한 평화통일’-은 여전히 미완의 상태에 있기에 논란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다. 말하자면 유엔사는 종전선언과 심지어 평화조약 이후에도 유지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 셈이다.

넷째,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미국의 유엔사 유지 정책을 정당화하는가? 그렇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북핵을 해결하지 않는(혹은 못하는) 이유는 북핵을 동북아질서 유지의 ‘꽃놀이패’로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북한의 핵이 ‘방어용’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미국이 선제타격하지 않으면 북한이 먼저 핵을 사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의도와 능력을 왜곡 과장하면서 북핵을 빌미로 한국과 일본을 통제하려는 미국의 숨은 목적은, 끝내는 미국의 퇴각을 재촉하는 ‘역타격(blowback)’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미국의 지위를 지탱해주고 있다.

지도자라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역사적 비전과 그것을 실현할 현실적이고 창조적인 전략 및 정책을 제시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종전선언과 같은 중요한 사안을 다뤄야 한다. 무지와 편견, 시대착오적 집착으로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오도해서는 안 된다. 시민의 부릅뜬 눈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김정배 (사)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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