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이름 모를 담당자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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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이름 모를 담당자님께
  • 경상일보
  • 승인 2021.10.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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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정 온남초 교사

담당자님, 안녕하세요. 우선 담당자님으로밖에 부를 방법이 없음을 양해해주십시오. 편지 봉투의 ‘보내는 사람’란에는 KT&G의 주소만 있을 뿐, 부서 이름도 성함도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희 반 학생들은 기대하지 않은 답장 소식에 반가워했지만 편지 내용은 썩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 아쉬운 마음을 담아 답장을 씁니다.

지난 7월, 저희 학교 6학년 학생들은 ‘담배꽁초 어택’이라는 프로젝트를 하며 동네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주웠습니다. 수십 년 간 해양쓰레기 중 1위를 차지하며, 미세플라스틱으로 땅과 바다를 오염시키는 물질이 담배필터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페트병에 모은 담배꽁초 5300여 개비를 KT&G 본사와 사옥으로 보내며 썩지 않는 플라스틱 필터 대신 자연에서 분해되는 소재를 개발하고, 담배 구매자들이 흡연 후에 담배꽁초를 무단투기하지 않도록 방안을 마련하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그것이 사회시간에 배운 기업의 책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담당자님은 학생들의 ‘요구’ 대신 ‘궁금증을 해소’해줄 답변을 주셨더군요. 우선 현재 담배필터로 쓰이고 있으며 미세 플라스틱을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라는 소재를 대신할 수 있는 성분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셨습니다. KT&G에서는 대체 소재 개발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셨지요. 하지만 검색 몇 번으로 이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스모키트리츠(Smokey Treats)와 스페인의 에센트라(Essentra) 같은 기업이 생분해성 필터를 출시했다는 사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 같은 초고속의 나라에서 유독 담배필터 소재를 개선하는 속도가 늦다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의아합니다. 혹시 그 이유가 KT&G는 독점기업이니 문제를 개선하지 않아도 구입할 소비자가 많다는 기만 때문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두 번째로, KT&G가 담배꽁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흡연자 인식 개선 캠페인, 실외 흡연실과 담배꽁초 전용 수거함 설치, 해양생태계 보호를 위한 해변 및 수중정화 활동을 하고 있음을 강조해주셨습니다. 아쉽게도 비수도권에 살고 있는 저와 저희 학생들은 KT&G에서 설치한 실외 흡연실과 담배꽁초 수거함을 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 요즘엔 ‘줍깅(쓰레기 줍기+조깅)’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이 길가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직접 줍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담배꽁초를 길에 무단투기하는 대신 종이에 싸서 보관하다가 휴지통에 버릴 수 있도록 만든 ‘시가랩’이란 것도 있더군요. 이것 또한 시민들이 진행하고 있는 캠페인입니다. 시민들도 이렇게 담배꽁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데, 담배를 생산하는 기업이라면 보다 진정성 있는 실천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편지 말미에 ‘앞으로도 KT&G에서 진행하는 환경 보호 활동을 지켜봐 달라’고 하셨지요? 사실 지켜보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지구 환경은 매순간 눈에 띄게 망가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멸종위기에 놓인 어린이·청소년 세대가 펼치고 있는 절박한 환경 보호 활동을 KT&G가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변화하는 기업의 모습을 보여주시길 기대합니다.

이민정 온남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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