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어린이보호구역, 누구를 위한 행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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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어린이보호구역, 누구를 위한 행정인가
  • 김정휘
  • 승인 2021.10.2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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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휘 사회부 기자

지난해 3월부터 일명 ‘민식이법’이 시행되며 어린이보호구역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최근 도로교통법 개정에 따라 어린이보호구역 내 주정차가 전면 금지되는 등 어린이들의 안전에 대한 조치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어린이 보호를 위해 조성된 어린이보호구역은 무관심 속에 방치된 곳이 많은 것 또한 아이러니한 게 현실이다.

최근 찾았던 장생포초등학교 정문 어린이보호구역은 아주 작은 300㎡ 규모의 근린생활 시설을 건설 중인데, 인도와 건설 현장 사이에 가람막이 없고 바로 옆 통학로에 공사용으로 보이는 보이는 폐자재와 널판지가 쌓여 있었다. 관리 인력도 없어 돌발 사고에 대한 대체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천상초등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울주 천상도서관에서 학교 정문으로 향하는 약 200m의 통학로는 협소해 어른들 보다 덩치가 작은 어린이 1명이 간신히 지나다닐 정도로 통행이 불편했다. 통학로 옆에는 텃밭이 있어 각종 적치물이 쌓여 있고 양철로 설치된 벽이 있는 등 안전 문제도 우려됐다.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공사를 진행할 경우 시공업체가 안전계획서에 따라 일정을 진행하도록 하고, 계획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학교장이 지자체에 계도 요청을 할 수 있는 행정적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양새다.

어린이보호구역 관리는 지자체 교통 관련 부서에서 담당하지만 그 권한은 노면 표시나 표지판 설치 등에 그친다. 과속방지턱이나 신호등 설치 계획을 물어보면 “과속방지턱은 다른 부서의 일이다” “신호등은 경찰에서 관할하는 사업이다” “우리 과는 권한이 없다”는 말로 대체로 일관한다.

어린이보호구역이 아닐 경우 이런 현상은 더 심화된다. 어린이들의 안전이 우려돼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제기해도 어린이들의 통학로임이 분명하지만 어린이보호구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예 관심을 두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도 종종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비극적인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운전자들에 대한 제한 조치나 어린이보호구역 지정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네 일 내 일이 아닌 우리 일이라는 생각으로,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한발 더 움직인다면 제2, 제3의 민식이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김정휘 사회부 기자 wjdgnl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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