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의 反求諸己(25)]꾸준한 둔재가 인정받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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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의 反求諸己(25)]꾸준한 둔재가 인정받는 사회
  • 경상일보
  • 승인 2021.11.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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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철호 문학박사·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석사학위논문을 준비할 때다. 당시 나는 700여 편의 인물전 자료를 읽고 그중에서 150여 편을 뽑아서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논문을 썼다. 자료들이 모두 한문이고 대부분이 번역된 적이 없는 작품이어서 작품을 읽는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서울의 모대학 대학원에 다니던 친구가 내게 말했다. 요즘 세상에 누가 그렇게 미련하게 원전을 다 읽고 논문을 쓰냐. 고생한다고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봤자 논문 한 편인데, 특히나 석사논문은 아무나 읽어주지도 않는데, 그 시간에 논문을 쓰면 예닐곱 편은 쓰겠다.

몇달 전의 일이다. 어떤 사람이 내게 강의를 듣겠다면서 찾아와서는 20자 정도 되는 문장을 툭 던지더니 무슨 뜻인지를 물었다. 초서로 휘갈겨 쓴 탓에 언뜻 알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한 후에 말했다. 그 사람은 내 말을 끊고 나에게 주역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잘 알지는 못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내게 주역도 모르면서 어찌 한문을 가르치느냐고 말했다. 그는 자기는 주역을 배웠다면서 주역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다. 듣다 보니 주역의 문리를 깨우친 것은 아닌 것 같아서 그에게 주역을 얼마쯤 배웠는지 물었다. 그는 육개월 조금 넘게 배웠다고 했다.

사람이 누구나 천재일 수는 없다. 천재는 적고 둔재는 많은 게 세상이다. 한 번 보고 이치를 깨우치는 사람은 드물다. 보고 또 봐도 이치를 깨우칠까 말까하는 게 대부분의 사람이다. 따라서 세상살이에 꼭 필요한 것이 꾸준함이다. 꾸준함의 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는 둔재를 넘어 천재로 간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는 꾸준함의 가치를 잊고 꾸준함을 미련함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꾸준함 없는 자칭 천재가 너무 많다.

김득신(金得臣)은 택당 이식으로부터 “그대의 시가 당금 제일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뛰어난 시인이었다. 그는 천재적 시인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사실 그는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서 지각이 발달하지 못한 둔재였다. 그래서 김득신은 책을 잡으면 수없이 반복하여 읽었다. <사기열전> 중 ‘백이전’을 11만3000번을 읽었고, 다른 작품들도 1만번 이상 읽었다. 한유가 쓴 <사기>를 천번 읽고서야 겨우 진사과에 합격했다. 김득신은 많은 시를 남겼는데 <용호>(龍湖), <구정>(龜亭), <전가>(田家) 등의 시가 유명하다.

송철호 문학박사·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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