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만의 사회와 문화 (28)]영국식 경영 성공사례 미국 남부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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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만의 사회와 문화 (28)]영국식 경영 성공사례 미국 남부 버지니아
  • 경상일보
  • 승인 2021.11.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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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문학

미국 남부 버지니아 지역은 영국이 아메리카 땅에 건설한 최초의 식민지가 있었던 곳이고 미국연방과 남부의 핵심지역으로 미국역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영국은 1607년 버지니아 체사피크만에 첫 식민지를 세우고 ‘제임스타운’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북부지역에 청교도 분리주의자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매사추세츠 식민지를 건설한 때가 1620년이니, 버지니아 식민지는 그보다 13년 앞선 것이다.

미국 역사에서 이 두 개의 초기 식민지가 갖는 2대 특성은 21세기 미국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전승된다. 미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매사추세츠 식민지는 신세계에 사랑과 종교자유의 공동체를 건설하겠다는 종교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면(물론 건국신화처럼 좀 과장·미화된 면이 있기는 하지만), 버지니아 식민지는 철저히 개인과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는 세속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등장한 영웅이 ‘존스미스’이고 위험한 순간에 그를 구해준 원주민 공주가 ‘포카혼타스’다. 나중에 남부 식민지 버지니아는 폭압적인 영국을 몰아내고 독립혁명을 달성했는데, 이 때 혁명군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이 버지니아 출신이었다.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로 출발한 버지니아 초기 역사에는 우리가 배울 점도 있다.

식민지 및 주의 이름이 된 ‘버지니아’는 당시 에스파냐를 격파한 엘리자베스 I세를 말한다. 평생 ‘영국이라는 국가와 결혼했노라’고 선언한 처녀 여왕이다. 버지니아는 ‘처녀(virgin)의 땅(ia)’이라는 뜻이다. 16세기 후반 엘리자베스 여왕 당시 영국은 모험과 정복욕으로 가득한 시기였다. 일확천금을 벌 수 있었고 영국에서 천민 또는 죄인으로 살아가던 이들에게는 신대륙은 기회의 땅이었다. 목숨을 걸고 시도해볼만한 가치 있는 일이었다. 마치 한국 군인들이 목숨 걸고 베트남 땅을 밟았거나 중동 사막속으로 근로자들이 달려갔던 이야기와 비슷하다. 영국상인들과 군인들이 선두에 나섰다. 영국 지배층에서도 신대륙 진출은 국내의 정세 불안을 해소할 정치적 해법이었다. 종교분쟁으로 생겨난 종교 난민들과 사회·경제 불안으로 범죄자·극빈층으로 인해 땅 좁은 영국사회가 매우 불안했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한 영국은 유럽을 넘어서 신세계로 눈을 돌리게 된다.

에스파냐(스페인의 새 표기)가 신대륙 식민지 경영에 실패한 반면, 영국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성공했다. 이 점이 우리가 배울 점이다. 에스파냐왕은 국왕이 식민지에 직접 군대와 개척민을 보내 직접 통치했지만, 영국왕은 이윤을 추구하는 개인과 회사에 대가를 받고 식민지 경영 특허장을 주는 간접 통치방식을 취했다. 실패하더라도 정부는 손해를 크게 입지 않는 반면, 개인과 민간기업은 폐업·도산 위험을 감수하고 열심히 일해 최대의 이윤을 가져가는 기회로 삼는다. 소위 하이 리스크-하이 프로핏 방식이다. 이 경영방식이 발전해 미국 특유의 개인주의와 자본주의를 낳았다고 본다. 국가나 정부가 독점하던 이윤은 조금 줄이고, 창의적 개인 및 사기업과 공동으로 이윤을 분배하는 구조를 정착시킨 것이다. 미국에서 수입된 개인주의와 자본주의는 미군정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와 경제제도로 정착돼 한국을 단시간에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게 된다. 따라서 매사추세츠의 종교적 자유와 관용의 정신도 배울 만하지만, 버지니아의 이윤창출 방식도 한국인이 주목할 만하다.

국가 차원의 경영방식도 중요하지만 개인-기업 차원의 노력도 기억해야 한다. 런던 투자회사는 1607년 120명의 성인 남자들을 이곳으로 보냈으나 대부분 도시에서 돈 벌려고 온 범죄자 및 극빈층으로 황무지 개척과 광산일에는 능력이 없었다. 여러명의 지도자가 경영에 실패하자, 새 지도자로 임명받은 이가 존스미스 선장이었다. 그는 원주민과의 대립, 내부 갈등, 굶주림, 질병을 잘 극복해냈다. 그의 취임 첫마디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였다. 귀족 출신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전 주민을 동원해 집과 울타리 수리, 샘물파기, 군사훈련을 시켰다. 강력한 지도력으로 그는 버지니아에 북아메리카 최초로 영국 식민지 건설에 성공한 영웅이 됐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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