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여행과 건축, 그리고 문화(63)]삶과 죽음의 공간, 히에라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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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의 여행과 건축, 그리고 문화(63)]삶과 죽음의 공간, 히에라폴리스
  • 경상일보
  • 승인 2021.11.1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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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5000명을 수용했던 큰 규모의 히에라폴리스 극장. 무대부분은 로마건축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석회질의 온천이 절벽을 타고 흘러내려 목화처럼 하얗게 만들었다고 붙여진 이름. 관광객들에게는 파묵칼레로 알려진 곳이다. 눈 덮인 것처럼 하얗게 물든 언덕과 김이 피어오르는 옥빛 온천수가 경이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장시간 버스여행에 지친 여행객들에게 따뜻한 온천욕의 기대는 가히 관광지로서 명성을 얻을 만하다. 건축물에만 관심이 있는 내게는 잠시 쉬었다 지나가는 휴게소나 다름이 없다.

온천장으로 가는 길은 약한 빗발에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사이로 이천년의 세월을 버틴 유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성벽과 성문, 분명 로마시대의 유적이다. 처음 한 두 개였던 유적들이 점차 수를 늘려가더니 급기야 도시규모로 확대된다. 어마어마한 음악당으로부터 신전과 관청, 주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적들이 완만한 구릉의 사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비록 폐허이기는 하나 도시의 위용을 유추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그리스어로 ‘거룩한 도시’라는 뜻이다. 그리스 영역에 속했던 기원전 2세기에 이미 온천이 발견되었고, 영험한 치료효과 덕분에 국제적 휴양도시, 의료도시로 각광받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장기간 거주하면서 온천은 물론 숙박, 상업, 관청시설들이 들어서고 극장을 비롯한 각종 위락시설과 종교시설까지 갖추게 되었다. 유적들은 그리스로부터 로마, 비잔틴에 이르기까지 고대도시와 건축의 위용을 증언하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이 잘 된 유적은 단연 극장이다. 관객 1만5000명을 수용했던 이 극장은 1세기 로마 하드리안(Hadrian)황제 시기에 건설되었다고 알려진다. 50줄로 구성된 반원형 관람석은 8개의 계단을 두어 7구역으로 나누었다. 단면적으로는 상부와 하부를 구분하는 중간 통로를 두고 관객들의 출입통로로 사용했다. 관객의 계급을 차별하는 방식인 동시에 동선의 편리함을 추구한 것이다. 무대를 향한 시선처리나 음향전달 기술은 이미 그리스시대부터 발달했던 터이니, 그 정도의 수용인원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무대부분은 경탄할 정도로 로마건축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무대의 배경되는 건물(scaenae frons)은 3세기경 세베루스(Severus) 황제 시기에 중건된 모습인데, 3층으로 구성되었으며 양측에 출입구를 두었다. 무대 뒤로 통하는 입구는 모두 3개가 있고, 각 입구마다 돌출한 기둥과 처마를 두어 건물의 현관처럼 처리했다.

무대 건물의 입면은 로마 귀족들의 우아한 저택 이미지를 보여준다. 벽에는 발코니 같은 좌대를 두어 조각상을 설치했고 짧은 기둥과 처마로 장식했다. 다만 처마 박공은 삼각형으로 처리하여 입구부분의 아치형 박공과 차이를 두었다. 코린트식 주두를 갖는 미끈한 대리석 기둥들은 긴 것과 짧은 것의 변화, 박공형태의 변화 등으로 풍부하고 생동감있는 입면을 연출했다.

멀리 에게해의 푸른 바다가 화려한 로마건축의 배경이 된다. 밤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공연을 관람하며 즐겼으리라. 무대 아래는 검투사들의 연습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무대 앞 반원형 공터(오케스트라)에는 수조를 만들어 수중 쇼가 공연되기도 했다. 온천과 휴양, 그리고 환락…. 고대의 라스베이거스라고 할까. 삶의 환희처럼 무대 또한 화려하다.

예수 사후 그의 가르침을 전파하러 전도여행을 떠난 사도들도 이곳을 거쳐 갔다. 각국의 사람들이 몰려든 환락의 국제도시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으리라. 사도의 관점에서 이곳은 이방인이며 이교도들에게 새로운 진리를 설파하여 개종시킬 수 있는 무대가 아니었을까. 사도 필립보는 여기에서 전교 활동을 펼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 비잔틴 시대인 5세기경 그가 순교한 자리에 기념교회(martyrium)가 세워져 이를 증언하고 있다.

기념교회를 보기 위해서는 산등성이로 올라야 한다. 돌담으로 길의 경계를 만들었으니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 가파른 경사는 아니지만 울퉁불퉁한 돌길이 제법 숨을 헐떡이게 한다. 올라가는 길 여기저기에 석관들이 나뒹굴고 있다. 가끔씩은 유해 일부가 나오기도 한다. 온천욕으로 치료하러 왔다가 죽은 이들의 무덤에서 나온 것들이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무덤 형식도 계급별로 다양하다. 서민들의 평범한 무덤형식에서부터, 석관 안에 안치하는 형식, 거대한 봉분을 쌓아 만든 형식, 그리고 신전 형식에 이르기까지 생전의 신분계층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석관의 모습은 더 직설적으로 계층을 표현한다. 화려한 조각으로 뒤덮인 대리석 석관들의 모습에서 로마귀족들의 삶이 드러난다. 하지만 산자락에 나뒹굴고 있는 빈 석관들은 그 모든 화려함이 허망한 것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실상 이렇게 죽은 이들의 묘지는 산 아래 도시의 성 밖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죽은 이들의 도시, 바로 공동묘지다. 도시 안에 있는 화려한 온천과 공연장, 그리고 신전이 있는 히에라폴리스가 현세라면, 네크로폴리스는 내세에 해당한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두 세계가 대비되면서도 연결되는 기묘한 조화를 느끼게 한다. 삶의 희열을 구가하는 대극장의 함성소리와 죽은 이들의 고요한 정적이 병존하는 공간이다.

교회 유적에서 히에라폴리스를 내려다본다. 비록 폐허의 유적이긴 하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2천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 삶과 죽음을 경계 짓는 장소, 그리고 종교적 신념과 세속적 삶. 이 모든 것들이 한 공간에 담겨 있다. 환락과 비탄, 세속과 신성, 시간과 공간…. 이것을 구분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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