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윤창호법 일부 위헌과 감성 입법의 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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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윤창호법 일부 위헌과 감성 입법의 자제
  • 경상일보
  • 승인 2021.12.0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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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규 변호사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왔던 윤창호씨는 2018년 9월25일 새벽 부산 해운대구 미포오거리에서 만취 운전자의 차에 사망하였다. 윤창호 씨의 친구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음주 운전자를 강력히 처벌하는 법률을 만들어 달라’고 제안하였고, 이것이 국민적 공분을 만들면서 윤창호법이 만들어졌다. 국민적 분노를 수용한 입법이었다. 그런 윤창호법 일부가 이번에 위헌 결정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7대2의 의견으로, 2회 이상 음주 운전한 사람에 대하여 징역 2~5년 또는 벌금 1000~2000만 원에 처하도록 규정한 도로교통법 제148조의2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책임과 형벌 사이에 비례원칙이 위반되었다는 것이다. 이 결정으로 현재 공판이 진행 중인 사건은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할 것이고, 이미 처벌이 확정된 사건은 재심청구가 쏟아질 것이다. 약 15만 명이 형의 감경을 요구할 수 있다고 추산한다. 위헌 법률 하나가 국가 사법기능에 상당한 후폭풍을 가져온 셈이다.

이런 정도면 과거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정식 기소된 형사사건 중에 교통 사건은 다소 정형화되어 있어 쉬운 업무영역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감당하는 판사의 심리적 고통은 다른 분야보다 어려운 경우가 많다. 교통사범은 과실범이다 보니 그 형이 상대적으로 낮은데 초래된 결과는 강력범죄보다도 더 처참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판사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어느 날 영문도 모르게 죽음을 맞이한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은 형언하기 어렵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의 분노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 분노를 비난할 여지는 없다.

문제는 이럴 때 국민들 사이의 이해 충돌을 조절해야 할 국가나 정치인이 제대로 대처하였는지를 물어야 한다. 공분이 쌓이면 대체로 국민 개개인은 이성적 판단보다 감성적 접근을 하게 된다. 이럴 때 정치인은 국민적 여론을 자신의 정치적 지평을 넓히는 기회로 삼으려 해서 안 된다. 국민의 공분이 쌓이는 시기에 정치적 틈새를 찾아 비집고 들어가 자신의 이름 한자라도 알리고, 자신의 업적을 세상에 자랑하려 들며, 그런 심산으로 입법을 하다가 균형감을 놓치기 쉽다. 국민은 잔뜩 화가 나려는 참인데, 정치인들이 옆에서 그러한 화를 부추기며 자신이 대단한 정의로 세상의 모든 고통을 해결해 줄 듯이 행세한다.

범죄자는 오롯이 악이어서 피해자를 위한 보복만으로 정의가 바로 선다면 그보다 쉬운 일이 없다.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막 소주 몇 잔을 하는데 가족이 위독하다는 연락이 오고, 차를 안 빼준다고 거친 항의를 받으면 순간 판단력이 흐려져 운전대를 잡는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평소 보던 모습이다. 내 이웃이고 열심히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한 번의 실수가 있는 정도에 그친다. 실수도 피해야 하지만 인간이니 실수를 한다. 10년 전의 음주운전 전력을 이유로 다시 음주운전을 했다고 징역 2년의 형에 처한다고 하면 그것을 납득할 사람은 적다. 형벌이란 행위와 균형이 맞아야 한다.

사람들은 뭔가 대중적 비난이 쏟아지면 더 엄하게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그러던 사람들이 사소한 실수로 그 법이 자신의 목을 겨누면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느냐고 소리친다. 사소한 위법으로 집행유예를 받아 직장을 잃을 위기에 놓이면 거의 삶을 체념하다시피 한다. 공분에 기대어 조금씩 형량을 올리다 보면 나중에는 사소한 범죄도 징역형의 엄한 처벌을 각오해야 한다.

국민 대부분은 자신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 행위의 대부분이 위법의 범주 안에 들어가 잠재적인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입법권자는 그런 위험성까지 모두 재서 법을 만들어야 한다. 또 국민적 공분이 조금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법을 만드는 것이 더 현명하다. 어린이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학대를 당하고, 불편한 음란물이 나오고 하여 대중의 흥분이 높아질 때마다 법이 하나씩 만들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공분과 감성보다는 균형과 이성으로 법을 만들고, 더하여 그런 불행을 사전에 차단할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김태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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