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암각화 발견 50주년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나]반구대암각화 의미와 가치 재정립할 사회적 공감대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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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암각화 발견 50주년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나]반구대암각화 의미와 가치 재정립할 사회적 공감대 형성
  • 홍영진 기자
  • 승인 2021.12.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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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호태 울산대 교수의 전각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세계’. 지난 11월 경인미술관에서 전시된 바 있다.

‘먼 옛날, 반구대암각화 절벽과 바다 사이가 그리 멀지 않았을 때, 바닷가에서 조개를 줍기도 하고 고래도 잡으며 살던 사람들이 울산 태화강을 거슬러 올라, 대곡천 기슭의 바위에 저들의 삶을 바위그림으로 남긴, 세계적으로도 귀중한 사례로 잘 알려졌습니다. 큰 바위에 고래도 새기고, 사슴이나 호랑이, 사람과 배를 함께 새긴 유적은 반구대암각화 뿐이라고 합니다. 옛 사람들은 울산만 근처의 높은 바위 절벽에 올라 넓은 바다를 보며 고래가 무리 지어 헤엄치는 모습을 보았고, 막 낳은 새끼를 등에 올려 첫 숨을 쉬게 하는 아름다운 장면도 눈에 넣고 기억해 두었습니다. 새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듯이 그렇게 큰 바다를 보던 경험을 반구대 바위에 새긴 겁니다…’

11월 중순 경인미술관 제5전시관에서 제9회 어라연전각연구회 정기회원전이 열렸다. 반구대암각화를 비롯해 한반도 전역의 암각화를 30년 이상 연구해 온 전호태 울산대 교수는 전각작품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세계’를 선보이며 이같은 설명으로 관람객의 이해를 도왔다.

반구대 암각화를 새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이곳저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반구대암각화세계유산추진단이 울산을 벗어나 13~14일 서울에서 국제학술대회를 실시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좀더 많은 이들에게 반구대암각화의 실체를 알리고,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여, 문화예술은 물론 학계의 연구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관심이 이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 13일 서울코엑스(COEX)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곡리반구대암각화 발견 5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 13일 서울코엑스(COEX)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곡리반구대암각화 발견 5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이번 학술대회는 전세계 암각화 중에서도 고래를 중점으로 다루고, 암각화 주변의 공간이 지니는 가치를 짚어보는데 집중했다. 그 중 칠레, 호주, 러시아의 암각화 유산 사례는 반구대암각화를 곁에 둔 울산 시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올해 초 천전리각석·반구대암각화가 세계유산 우선등재 목록에 올랐고, 그 주변이 명승으로 지정됐는데, 앞으로의 방향과 새로운 과제를 고민해야 할 때임을 알려준 것이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엘 메다노 바위그림은 ‘성스러운 장소’다. 발표자 벤하민 바예스테르 칠레 프로콜롬비노 예술박물관 큐레이터는 그 공간의 신성을 현대사회와 끊임없이 연결시켜야 한다고 했다. 암채화에 그려진 대상은 선사인이 꿈꾸던 이상향으로만 규정될 순 없다. 선사인의 유토피아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당시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물리적인 현실과 물질적 구체성을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암채화가 그려진 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곳은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순례지와 같다고도 했다. 칠레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미지를 탐구하거나 색다른 경험을 하기 위해 그 곳을 방문한다. 발표자는 엘 메다노 유적은 문화유산을 탐구하기 위한 관광객 순례의 중심이라고 했다. 시대와 사람은 달라졌으나, 엘 메다노 암채화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성스러운 장소로서 그 역할을 이어간다고 덧붙였다.

조 맥도널드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학교 암각화연구센터장 역시 ‘고래, 고래잡이 사냥꾼 그리고 제의’ 주제발표에서 그들 유적의 현 주소를 알려줬다. 서호주 댐피어 군도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풍부하고 다양한 암각화가 분포한다. 총 42개의 섬이 너른 지역에 흩어져 있는데, 곳곳에서 모두 100만 점 이상의 암각화가 발견됐다. 암각화는 5만년 전 호주 북서부에 도착한 사람들이 그 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수렵꾼, (고래)사냥꾼, (진주)채집꾼, 탐험가, 그리고 유목민으로서의 삶을 이어 온 과정을 알려준다. 수많은 암각화 중 고래 그림이 차지하는 수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지만, 그 대신 해양생물의 꼬리인 듯 보이는 그림이 상당히 많다. 이를 두고 발표자는 그 곳 사람들이 매년 두 번 고래가 번식을 위해 이동하는 모습을 지켜본 것이라고 했다. 반면 같은 호주 내 암각화 유적일지라도 시드니의 경우 카누를 타고 해안에서 스트랜딩(집단자살)한 고래를 잡아먹은 낚시꾼에 집중한다. 이 경우 고래는 실제 크기로 그 신체구조가 상세히 표현됐다. 해당 지역의 100점이 넘는 고래 모티프는 고래가 상당히 친숙한 대상이었음을 보여준다.

나데즈다 V.로바노바 러시아카렐리아연구센터 선임연구원 역시 ‘러시아 오네가호의 암각화와 신성한 공간’ 주제발표에서 선사 암각화를 신성한 곳으로 간주한다. 바위와 돌은 기도와 같은 의식을 치르는 장소다. 선사인은 돌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으며 주변 자연을 신성하게 여겼다. 돌의 단단함과 영원성은 지상 생물의 허약함, 사물의 연약함, 그리고 온갖 현상의 변화와 대조되기 때문이다. 발표자는 오네가호 동쪽 선사시대 암각화 보호구역을 한 번이라도 방문한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고 했다. 공간 자체가 지니는 불가사의한 힘이라고 했다. 대단하면서도 기묘한 선사인들의 메시지가 수천 년을 지나 현시대 우리에게 닿는 것이라는 것이다.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된 암각화 공간은 그 곳 경관만이 갖는 특별한 매력, 독창성때문에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갖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러한 자연 경관에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며, 신성한 본질 그 자체로 가치를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역설했다.

무엇보다 이번 국제학술대회 성과는 14일 실시하는 대중강연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새로운 연구자의 새로운 가설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선사시대 암각화 문화에 대한 연구가 한반도 역사문화의 빗장을 풀 새로운 열쇠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배기동 동아시아고고학연구소장은 ‘세계유산으로서 반구대 암각화’에서 세계유산 등재를 뛰어넘는 ‘국가적 자부심’을 역설하고, 등재를 위한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강인욱 경희대 교수는 ‘암각화를 누가 언제 새겼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반구대 주변은 물론 동해안을 따라 또다른 암각화의 발견을 기대한다’며 지속적인 연구와 확장성을 예고한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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