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지관(止觀)-멈추면 보이는 것, 멈추고 봐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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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지관(止觀)-멈추면 보이는 것, 멈추고 봐야 하는 것
  • 경상일보
  • 승인 2022.01.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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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해 시인·울산문인협회장

필자는 2021년 6월26일, 오래도록 방치되었던 냉동창고를 햇빛 속에 꺼내어 복합문화시설로 리모델링한 ‘장생포 문화창고’ 개관식에 참석한 바 있다. 두 달여 뒤에는 문화창고 6층에 북카페 ‘지관 서가(止觀書架)’ 2호점이 시민의 마음 양식을 채워줄 휴식 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남구청이 주관한 이 행사에는 지난 반세기 동안 산업 수도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울산의 문화 발전을 바라는 많은 인사들이 참석했다.

‘지관 서가’는 SK어드밴스드가 사회공헌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인문공간으로, 1호점인 울산대공원점을 비롯해 2029년까지 총 9개 지점을 만들어 울산시에 기부하고 그 수익금은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에 쓴다고 하니, 어려운 시대에 기업이 시민들에게 지친 심신을 치유할 기회와 공간을 제공하고 이익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지역 문화의 건강한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관(止觀)’은 ‘어지럽게 흐트러진 마음을 멈추고 한곳에 집중해 만법을 비추어 보는 불교 수행법’의 하나라고 한다. 그러나 종교에 문외한인 필자로서는 여기서 ‘지관’이 내포하고 있는 심오한 뜻에 대해 논할 능력은 없다. 다만 단순하게 ‘지(止)’와 ‘관(觀)’이라는 한자가 지닌 뜻을 바탕으로 소박한 제언의 말문을 열고자 한다.

혜민 스님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멈추고 더 살펴보아야 하는 것들’도 많다.

그간 우리는 경제 발전과 물질적 풍요를 목표로 경주마처럼 정신없이 달려왔다.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선진 산업사회로의 도약을 위해 울산의 기업들은 역량을 총동원해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등 중요 산업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았고 수출 입국, 공업 입국의 기치 아래 울산은 산업 중심도시로서 대한민국의 외적 성장에 중차대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현대는 경제적 성장만이 능사가 아니다. 코로나19라는 엄청난 도전으로 마음이 우울해지고 삶이 극도로 피폐해진 지금, 숨 가쁘게 달려온 질주를 잠시 멈추고 정신적 갈증을 다독여주는 따뜻한 손이 더더욱 필요한 때이다.

물론 멈추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그치(止)’고 단순히 ‘보는(觀)’ 것을 넘어 좀 더 적극적으로 ‘살피는(察)’ 자세도 필요하다. 의사가 여러 방법으로 환자의 증상을 살펴보듯이 상황을 잘 진찰(診察)하고, 좀 더 깊이 있게 고찰(考察)하고 성찰(省察)하면서, 치유 방안을 꿰뚫어 살피는 통찰(洞察)이 요구된다.

필자는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가 ‘지관 서가’와 같이 문화적 마인드 개발과 투자에 좀 더 통 큰 지원을 했으면 한다. 반구대 암각화, 공룡유적, 처용가를 비롯한 소중한 문학적 콘텐츠와 오영수, 서덕출, 최현배 등 걸출한 문인을 배출한 인문학적 자산을 바탕으로 울산에도 ‘시립 문학관’ 설치 논의가 다시 공론화하고 나아가서 편리한 공연과 전시는 물론 문예 강좌를 상설로 개설할 수 있는 가칭 ‘예총회관’을 건립함으로써 이 지역 문화단체의 활동 영역을 확충하고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넓힐 수 있기를 바란다.

도시 재생사업을 통해 외관을 개선해 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관계 당국의 정책을 입안하는 분들과 울산을 터전으로 한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합심해 국격의 척도인 문화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견지할 때 산업수도 울산은 21세기 대한민국 문예부흥의 발상지로 거듭날 것이라 확신한다.

지금도 울산의 많은 기업체가 각종 단체의 사업에 상당한 후원을 하고 있지만 한 번 하고 나면 금방 잊어버리는 고비용의 단발성 행사는 지양하고 시민들이 꾸준하게 향유할 수 있는 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소망한다. 문화사업에 대한 투자는 제품 생산과는 달라서 당장은 비생산적이고 피부에 와 닿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공감하고 오래도록 기억하며 감성을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므로.

‘지관!’ - 이 세상에는 번잡한 일상을 잠시 멈추고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권영해 시인·울산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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