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런던올림픽 첫골에 8강 진출까지…29살에 의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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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런던올림픽 첫골에 8강 진출까지…29살에 의문사
  • 경상일보
  • 승인 2022.01.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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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열린 울산박물관 김성곤 추모전시회 포스터.

◇설움의 역사 씻어낸 올림픽 첫 골

정부수립 보름여 전인 1948년 7월29일 개막된 런던올림픽에 우리 선수단은 그동안 일제하 민족의 설움과 울분을 삼키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입장했다. 당대 최고의 축구스타 최성곤도 아시아를 넘어 세계무대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한국의 첫 상대는 멕시코였는데 아무도 한국의 승리를 예상하지 않았다. 킥오프의 휘슬이 울리자 우리 선수들은 긴장해 잠시 주춤했지만, 이후 자신감을 찾기 시작했고 전반 13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멕시코를 상대로 첫골을 넣었고 그 주인공이 바로 아시아의 표범 최성곤 선수였다.

선수들은 얼싸안고 감격과 눈물로 기쁨을 나누었고 최성곤의 올림픽 무대 첫 골은 설움의 역사를 씻어낸 눈물의 첫 골이었다. 최성곤의 첫 골에 자신이 붙은 한국은 멕시코에 믿기지 않은 스코어 5대3으로 승리했고, 이제 막 독립한 아시아 작은 나라의 선전에 세계는 감동의 박수를 보냈다.

정부수립의 기쁨까지 더해져 올림픽 8강을 이끈 최성곤은 영웅 대접을 받았고 그의 축구 인생은 곧 한국 축구의 역사가 됐다.

최성곤은 올림픽 이후 현역에서 물러나 부산에서 운동구점을 하면서 부산상고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최성곤의 미스터리한 죽음

최성곤은 그의 의지와 상관없는 사건으로 그의 인생 모든 것이 달라졌다. 고향인 울산에 들렀다가 방어진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를 탄 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 배를 탄 뒤 실종됐고 일주일 뒤 서생 앞 바다 어망에 걸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민족의 한과 설움을 씻어낸 올림픽 첫골의 주인공이자 한국 축구의 영웅, 최성곤은 이렇게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그의 죽음은 여러 추측만 난무하는 미스터리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그가 하늘로 가신지 70년이 넘은 지금까지 그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잊혀진 일이 되고 말았다. 최성곤 죽음의 소문은 “북한 무장공비에 사살됐다, 배가 암초에 걸려 좌초되어 해난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일본 야쿠자들에게 참변을 당했다”는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지금까지도 어느 하나 명백히 밝혀진 사실이 없다.

아들의 비통한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는 그가 기증한 울산공설운동장에서 아들을 추모하는 축구대회를 열었다. 먼저 간 아들을 그리워하던 어머니는 통곡과 절규로 아들의 이름을 불렀고, 훗날 아들의 묘에 이런 비석을 세웠다. “아들이 고인이 된지 33년, 아들의 이름 두자만이라도 이 세상에 남겨 놓고 가려는 팔순 노모의 간절한 소원으로 이 비를 세운다.”

그의 친구 김태근(현 ubc 김종걸사장 부친)은 묘비 추도사에 “축구의 고장 울산이 낳은 불멸의 별 최성곤, 일본을 제패한 ‘한국의 최’ ‘그라운드의 표범’ 한국의 축구가 세계로 나아가는 문을 뚫으려고 몸부림 치고 있는데 이 안타까운 현실이 그를 더욱 생각나게 한다.”라고 울먹였다. 하지만 그의 가족과 몇몇 지인을 제외하고는 한국축구사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 불멸의 기록을 남긴 울산이 낳은 축구천재 최성곤을 기억하자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에 맞춰 최성곤의 사진과 자료를 어렵게 모아 울산박물관에서 그를 기리는 추모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 축구가 이어지는 한 잊혀질 수 없는 불멸의 역사를 쓴 축구 영웅 최성곤을 그의 고향 울산에서 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안타깝다.

▲ 오흥일 울산시체육회 사무처장 울산시 초대·2대 교육위원
▲ 오흥일 울산시체육회 사무처장 울산시 초대·2대 교육위원

올해 10월에는 제103회 전국체전이 울산에서 열린다. 울산에 처음으로 공설운동장을 만들어 기증한 이가 최성곤 선수의 부친 최신출이다.

11월에는 카타르에서 2022 월드컵이 열린다. 암울한 일제강점기 때 우리민족에게 축구로 희망을 선사하고 신생독립국으로서 올림픽 무대에서 불멸의 첫 골을 기록하고도 쓸쓸히 29세의 젊은 나이에 하늘로 간 최성곤이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더 안타까운 일은 한 시대를 풍미하던 갑부 고씨댁(고기업)과 최씨댁(최신출)이 3대를 못 넘기고 사라진 북정동 옛터에 오면 이웃의 한사람으로 마음이 아프다. 최성곤 선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업적과 발자취를 기리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오흥일 울산시체육회 사무처장 울산시 초대·2대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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