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사물을 보는 두 개의 시선-‘쇠똥구리’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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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사물을 보는 두 개의 시선-‘쇠똥구리’의 경우
  • 경상일보
  • 승인 2023.11.2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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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해 시인·울산문인협회장

온 정성을 다해 건축한/ 둥근 집 한 채가 굴러가고 있다// 쇠똥구리는 물구나무선 채로/ 뒷발로 소똥 경단을 경쾌하게 밀고 있다/ 그러나 과욕을 부려 너무 커져 버린 경단을 두고/ 도중에 다른 놈이 나타나 결투를 벌이느라/ 많이 훼손되었다// 요행히 다시 낚아채고/ 힘겹게 굴리다가/ 이번에는 뾰족한 나무 꼬챙이에 걸려/ 낭패하는 모습이/ 아주 인생을 닮았다.



얼마 전, 모 TV 방송의 생태 영상을 보고 필자가 지은 시의 앞부분이다.

멸종위기종 2급으로 분류되는 쇠똥구리는 주로 초식동물의 배설물을 먹이로 삼아 유기물을 분해함으로써 토양의 건강과 영양분 순환을 통해 생태계의 균형에 기여한다. 그러나 가축에 공급하는 항생제 등 화학 사료로 인해 서식환경이 급격히 악화함으로써 멸종위기종이 되었다.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에서 몽골로부터 수백 마리 쇠똥구리를 들여와 인공번식을 통해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하니 다행한 일이다.

이제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2023년이 막바지에 와 있다. 힘겨운 코로나의 시대가 가까스로 끝나고도 온갖 황당한 사건이 발생하고, 박수도 있었지만 야유와 지탄(指彈)이 쇄도한 한 해였다. 어떤 것은 반면교사로,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이고 일부는 귀감(龜鑑)으로 삼아야 할 것도 있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나는 과연 얼마나 과도한 욕심을 부리고, 얼마나 자주 남을 타박했는지, 다른 이에게 불편을 주지는 않았는지 성찰해 본다.

살다 보면 세상에는 늘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눈이 두 개인 것은 긍정과 부정의 세상을 제대로 읽고 발전적으로 승화시켜 나가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의미 있는 것도 무의미한 것도 모두 인생이고, 찬탄도 비하도 다 삶의 일부분이다.

세상살이는 몸보다 수십 배 무거운 짐을 지고 나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쇠똥구리의 고행과 같은 것이니, 남을 밀치거나 끌어내리지 않고 제 갈 길 묵묵히 걸어가는 데에는 그만큼 수행이 필요하다. 쇠똥 경단을 차지하려는 적절한 경쟁은 사회를 건강하게 하지만 지나친 욕망은 자신과 이웃을 병들게 하고 부정적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된다.

사람들은 탐욕, 권력욕, 명예욕을 내려놓는다고 입으로는 선언하지만 인간인 이상 손에 잡은 것을 다 내려놓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 것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지만, 욕심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만 있다면 불필요한 알력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으리라.

앞으로 쇠똥구리 복원이 성공하면 즐거이 소똥을 굴리는 그들을 도처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쇠똥구리가 애지중지 제조한 소똥의 크기를 욕심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그에게는 소똥 경단의 규모가 능력남의 기준이라고 한다. 그것으로 구애 활동을 하고 짝짓기 후에는 산란하여 오순도순 새끼를 기르는 따뜻한 가정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삶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사람들은 쇠똥구리처럼 물구나무를 서서 자신이 반죽한 경단을 굴리며 오늘은 성찰해 보라.

비난도 축복도, 영욕(榮辱)도 하나요, 사랑과 증오도 ‘애증’이란 말 속에 한 덩어리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필자는 힘겨운 스트레스이기도 하고, 살아가는 힘도 되는 쇠똥구리의 소똥 경단을 보는 두 가지 시각에 대해 이렇게 끝맺는다.



가정을 꾸리고/ 제 새끼를 부양하기 위해/ 빵 삼아, 이불 삼아 굴리는 세상은/ 쇠똥구리에겐/ 짐이 되기도 하고/ 집이 되기도 하는 것// 굴리기가 생애의 전부라면/ 얼마나 싱거울 것인가/ 거꾸로 보이는 세상을 바로 세우려/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 가치로움과 부질없음이 모여/ 세상이 굴러간다// 詩가 된다.

권영해 시인·울산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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