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윤리학자 피터 싱어에 의해 ‘동물 해방’ 운동이 일었다. 인간 이외의 동물은 서구 지성사에서 오랫 동안 도덕적 보살핌의 대상으로 인정받지 못 했다. 플라톤부터 이어져 온 생각, 즉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만이 자연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다만 칸트는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행위는 다른 인간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으므로, 동물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인간이 중심이었다.
싱어는 도덕적 배려의 기준을 생각하는 능력이 아닌 고통과 쾌감을 수용하는 능력에 둬야 한다고 보았다. 고통을 피하고 쾌를 추구하는 모든 생명체는 도덕적 보살핌의 대상이라는 생각이 전세계 큰 영향을 주었다. 스위스 등을 시작으로 식재료로 널리 쓰이는 바닷가재를 살아 있는 상태로 끓는 물에 넣지 못 하게 하건, 얼음에 보관하지 못 하도록 하는 식으로 동물보호법이 수정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그런데 또 시간이 흘러, 철학자 군켈은 ‘동물 물음’ 이외에 ‘기계 물음’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고 주장한다. ‘기계 물음’은 기계의 도덕적 지위를 묻는다. 즉, 인공지능이나 로봇도 도덕적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냐는 물음이다.
일본에서는 로봇 강아지 아이보의 주인들이 고장난 아이보를 위해 합동 장례식을 치른 적이 있다. 보스톤 다이내믹사가 직접 개발한 로봇의 성능을 실험하기 위해 로봇을 떠밀고, 발로 차는 영상에는 “그런 행동을 로봇에게 하지 말라”는 내용의 수많은 댓글이 달린 바 있다. 단순히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라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생각이 일상에서, 직관적으로 옳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인공물도 도덕적 보살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인공물은 분명 인간이나 동물처럼 느낌, 감정 등을 갖지 못 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얘기하면, 나 이외의 사람에게 마음이 있느냐는 물음은 난제 중의 난제이다. 타인에게 마음이 있다고 우리는 추측할 수 있을 뿐, 증명할 수는 없다. 다른 동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인공물에게 마음이 없으므로 도덕적 지위를 부여할 수 없다는 생각은 재고해야할 견해일 수 있다.
김남호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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