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철의 별의별 세상이야기(1)]텅 빈 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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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의 별의별 세상이야기(1)]텅 빈 충만
  • 경상일보
  • 승인 2025.01.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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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철 울산장애인재활협회장

작년 가을, 필자가 속한 협회 장애인들에게 평소 많은 관심을 가진 지인이 경주 보문단지 인근 세컨하우스를 이틀간 내어 주었다. 조망이 좋은 넓은 대지에 그림 같은 집 구조는 물론 앞마당에 멋스러운 몇 그루의 소나무가 잘 어울리는 그런 장소였다. 거기에다 푸른 잔디가 온 마당을 뿌리고 있고 황토방이 따로 있는가 하면 야외에는 바비큐 장소와 실내에는 노래방 시설도 갖추어져 있을 만큼 완벽한 레저와 힐링의 무대였다.

실내 곳곳에 주인장의 정성이 배인 화려한 장식과 침구류는 고급 호텔을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집안 곳곳을 다들 둘러보면서 이렇게 화려하고 멋진 곳은 처음 와 본다는 이야기가 난무한다.

이러한 장소에 우리 장애인 수십명과 이들을 위해 평소 열정을 쏟아 온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 그리고 함께 온 장애가족분들이 가을 바람 솔솔 부는 소나무 아래에서 삼삼오오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웃음꽃을 피우니 극락이 따로 없고 천국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날 이들을 위해 돼지 수육 몇 상자를 삶아 온 친구가 있는가 하면 밤새 잡채와 전들을 준비해 한 가득 차려내 놓은 주인장의 마음씨는 일곱 색깔 무지개보다 더 고운 듯하다. 한 차 가득 악기 장비들을 싣고 온 지인의 흥겨운 색소폰 연주는 천년 고도 서라벌의 밤하늘을 수놓아 놓기에 충분하였다.

곧이어 장애가족 돌봄사업 일환으로 육성하고 발굴해 낸 여학생의 단아한 한복 차림 대금 연주는 그 어떤 연주보다도 감동이었고 이날의 백미였다.

대금은 원래 선율 자체가 사람의 애간장을 녹일 만큼 구슬프고 한과 비통함이 서려 있는 느낌인데 그간의 녹록지 않은 삶의 여정이 투영되는 듯 들려와 뜨거운 눈물이 입술을 스치고 있다.

독거 노인분들을 모시고 목욕 봉사를 다녀온 자원봉사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눈물을 글썽인다. 얘기인즉슨 본인은 부친 살아생전에 아버지의 등을 한 번도 밀어드린 적이 없었다고 말하면서 너무나 후회가 된다고 말끝을 흐린다.

평소 애지중지하는 소중한 공간을 수십 명의 장애인들에게 선뜻 내어 줄 뿐만 아니라 집채 만한 잡채를 내놓는 그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날 함께한 자원봉사자와 수 많은 물품 기부를 기꺼이 해준 이들 역시나 같은 마음 아닐까 생각된다.

자국 우선주의로 무장한 트럼프 정부 출범을 앞두고 탄핵 정국의 불안함과 불투명이 우리를 더욱더 옥죄고 있는 요즘이다. 더군다나 무안공항의 여객기 참사가 우리 모두를 슬픔에 잠기게 해서 그런지 올 겨울은 유독 차갑고 길게 느껴진다. 이럴수록 온기 가득한 세상을 열어가는 힘은 서로를 배려한 따뜻한 마음임을 기억하는 을사년이 되었으면 한다.

김병철 울산장애인재활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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