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학교밖 통고제도의 민낯]보호아동 통고, 시설장 재량에 맡겨 악용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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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학교밖 통고제도의 민낯]보호아동 통고, 시설장 재량에 맡겨 악용 가능성
  • 이다예
  • 승인 2025.01.2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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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한 아동보호시설이 보육 과정에서 취한 일부 조치가 부적절하다는 의혹이 제기(본보 1월20일자 5면)된 가운데 ‘통고제도’의 명암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학교폭력 예방과 교권 보호 등을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임에도 아동인권 침해 소지가 있는 만큼 통고제도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통고는 범죄소년(14~18세)·촉법소년(10~13세)·우범소년(10~18세)을 발견한 보호자나 학교장 등이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법원에 소년보호사건을 직접 접수시키는 절차다.

보호자와 학교, 법원이 힘을 모아 초기에 청소년 비행에 개입할 수 있고, 소년이 수사기관으로부터 수사를 받는 부담과 범죄경력조회에 기재되는 등의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된다는 이점이 있다.

특히 통고 이후 화해권고 절차로 이행이 가능하고, 그 과정에서 분쟁 갈등을 해결할 수 있어 학폭 또는 교권 침해 행위에 대한 대책으로 꼽히며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는 이 제도가 적극 활용되도록 안내하고 있다.

통고는 학교뿐만 아니라 아동복지시설이나 양육원과 같은 사회복리시설에서도 시행할 수 있다.

사회복리시설장도 수사기관을 통하지 않고 법원에 소년보호사건을 접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부 생활지도원들은 사회복리시설에서 시행되는 현 통고의 교육적 효과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생활지도원은 시설에서 0세부터 만24세 미만의 아동을 관리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다. 아동이 입소할 때부터 퇴소할 때까지 담임교사 역할을 맡고 있다.

일부 생활지도원들은 아동이 통고 수준에 이르는 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시설장의 눈 밖에 나거나 단체생활의 분위기를 흩트린다면, 본보기를 목적으로 통고를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시설에서 보호 중인 아동의 통고는 시설장의 재량에 맡기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대다수 생활지도원이 아동의 통고에 동의하면 일부 반대 의견이 있더라도 그대로 진행되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보호 중인 아동에 대해 치료를 우선시하는 대책은 묵살당하고, 무조건식의 통고가 내부적으로 속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통고 절차가 진행되면 아동의 입장과 특성을 고려한 개별적인 보호 조치는 없고, 오로지 피의자 신분으로 범죄자 취급만 받을 수 있다”며 “실제로 통고된 아동이 조사 과정에서 경찰로부터 ‘변호사 살 돈 있냐’ 등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질문을 받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시설 입장에서 다른 아동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아동을 자체적으로 양육하기 어려운 것은 맞다”면서도 “다른 시설에서 6개월, 1년의 시간을 보내고 원래 있던 시설로 돌아올 때 아동의 상태는 이전보다 더 악화될 우려가 크다. 편하게 관리하려고 아동만 양육시설과 보호치료시설을 오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통고가 학교 밖에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보다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선 현장의 생활지도원들은 통고가 혹여나 아동에게 벌을 줄 목적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시설 관계자의 제도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동에 대한 심리치료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약자인 아동과 관련된 법적인 조치가 남용되거나 악용되지 않도록 성인 보호자의 관심과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배미란 울산대학교 교수는 “통고를 비롯해 여러 제도의 기준을 특정 시설에 맞춰서 할 수는 없지만, 여러 민원이 발생하고 있는 제도를 놓고 지역 사회와 이해관계자들이 전반적으로 검토해 보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다예기자 ties@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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