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기 트럼프 정부에서 전 정부의 정책 기조를 폐기하고 방향을 전면 전환한 정책들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지난 13일 대통령 업무 지침(presidential memorandum) 형식으로 발표된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s) 부과는 국가 간 관세율 조정에 있어 미국 정부가 1947년 이후 택해왔던 기존의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 협상 방식을 미국 정부가 자체 기준에 근거한 양자 협상 방식으로 변경하겠다는 의미가 있다. 더불어, 한국을 포함한 자유무역협정(FTA) 국가들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으로 우리나라 산업과 경제에 큰 영향이 예상된다.
이달 초, 미국 정부는 캐나다와 멕시코가 미국에 수출하는 상품 대부분에 25%의 보편 관세(blanket tariff)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가 양국의 반발로 하루 만에 시행을 30일 유예한 바 있다. 유럽연합(EU)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대규모 무역 적자를 언급하며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과 의약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포함해 개별 국가나 경제권역과 관계없이 관세율 인상의 명백한 대상임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말 그대로 관세 전쟁의 선전 포고가 미국 정부로부터 세계 각국을 향해 매주 쏟아지고 있다.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 국가일 뿐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는 유예기간이 끝나 변경된 관세율이 적용될 경우 WTO에 분쟁 개시 선언 및 보복 관세 부과 방침을 천명했다. 중국은 이미 지난 5일 WTO에 미국 정부가 자국에 부여한 10%의 추가 관세가 미국이 가입한 1994년 GATT 협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분쟁 개시를 선언했다. 참고로 WTO 내 무역 분쟁 해결 절차는, 분쟁개시를 선언한 국가가 협상을 신청하고, 60일간 분쟁 당사자 양국이 협상을 진행하되, 분쟁 종결 합의 도출에 실패하는 경우 WTO 패널들의 판정을 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법리가 아닌 힘의 원리에 의해 좌우되는 국가 간 분쟁 현실에서 WTO같은 국제기구가 효과적인 분쟁해결기구로 일할 수 있을까. 캐나다 법무부 통상법제실 실장이었던 매튜 크론비 변호사는 관련 절차가 강제력 있는 판정으로 분쟁을 직접 해결하기보다는 분쟁을 공식화하여 해결을 촉진하는 상징적인 의미 정도가 있다고 말한다. 심판 앞에서 승패를 겨루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니 이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나, 공식적인 분쟁해결절차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법적,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는 의미이므로 결과 승복의 과정은 명쾌하기 어려우며 집행의 불이익을 감수케 하는 일 또한 매우 어려울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기업가이자 정치인인 트럼프가 단순히 무역 적자만을 시정하겠다고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관세 정책들을 연달아 시행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애써 해석할 필요도 없이, 백악관은 이달 초 주요 교역국들에 대한 관세 정책을 발표하면서 그 배경으로 난데없이 불법체류 외국인, 마약, 그리고 당초 진통제였으나 현재 미국인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약물이 된 펜타닐이 미국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말로써 자신들의 의도를 드러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저임금 저소득의 미국인들이 자신의 임금 환경을 악화시키는 경쟁자로 생각하는 불법체류 외국인들을 몰아내는 데에도,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약물이 미국 사회에 만연하게 된 것이 중국의 화학물질 제조기업들과 캐나다, 멕시코의 범죄 조직 탓이라는 주장에도 관세 전쟁은 그 근거와 명분을 두고 있다. 자신들의 불행이 남에게서 비롯한 것이라는 인식과 그 해결을 타자에 대한 분노와 혐오, 위해에서 찾는 이 수법은 역사 속 선례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된다.
트럼프 정부의 의도대로, 관세가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의 정책이었다면 미국의 이전 정부들은 왜 진작에 같은 방법을 쓰지 않았을까.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관세 정책 자체는 1기 정부 당시 정책과 집권 전 선거 공약상 일관되지만, 그것이 가져올 동맹의 약화와 블록화될 세계가 그가 미국민들에게 약속한 위대한 미국과 미국인의 풍요를 실제로 가져올지, 그리고 그 풍요와 위대함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우방이나 혈맹이라는 주문을 믿기보다 그 불확실성에서 살아남을 궁리를 할 때이다.
이준희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