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21일,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이 확정됐다. 전기본은 향후 15년간의 전력 수급을 전망하고, 안정적 공급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정부의 장기 에너지 전략으로, 전기사업법에 따라 2년마다 수립된다. 과학적 수요 예측을 바탕으로 다양한 에너지원을 활용한 효율적인 전력 공급 방안을 제시하는 국가적 로드맵이다.
이번 제11차 전기본(2024~2038) 수립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신규 원전 도입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으로 역대 가장 어려운 과정을 거쳐 통과됐다. 1년 8개월간의 긴 논의 끝에, 당초 실무안에서 포함된 신규 원전 4기 중 1기가 제외되고 태양광 설비가 추가됐다.
확정된 제11차 전기본은 반도체·데이터센터·전기차 등 전력소비 급증에 대비한 전략적 전력 공급 방안을 담고 있다. 2038년 예상 최대 전력 수요 129.3GW를 충족하기 위해 원자력(원전 2기, SMR 1기), 재생에너지, 청정수소 등 다양한 무탄소 에너지원을 활용한다. 재생에너지 비중은 2038년까지 29.2%, 수소·암모니아도 6.2%로 확대된다. 동시에 노후 석탄발전소는 폐쇄 또는 LNG로 전환해 온실가스감축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다.
이번 전기본의 핵심 변화는 중앙집중형 전력계획에서 벗어나, 정부 주도의 시장 개념을 도입한 점이다. 무탄소 입찰시장을 개설해 발전원의 구체적 구성비를 미리 결정하지 않고, 시장 원칙에 따라 경쟁적으로 선정하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정부는 에너지산업계의 기술경쟁을 유도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경쟁을 촉진해 기술 혁신과 비용 절감을 유도하지만, 전력 공급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실제로 제11차 전기본과 함께 통과된 해상풍력특별법, 국가전력특별법에서는 정부 주도의 계획적인 보급을 통한 공공성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 한국동서발전은 단순한 발전사업자가 아닌, 국가 에너지 전환을 이끄는 핵심 주체로서의 주도적인 역할이 더욱 커졌다.
먼저, 무탄소 입찰시장에서의 공공 주도의 기술 혁신과 실증사업 확대를 선도해야 한다. 수소·암모니아 혼소 발전, 그린수소 생산 등 다양한 무탄소 기술의 상용화를 추진하며, 실증사업을 통해 기술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민간 및 연구 기관의 참여를 촉진하고, 국내 무탄소 전원 확대를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동서발전은 당진발전소에서 암모니아 혼소 실증과제를, 울산발전소에서는 수소 혼소 발전소 건설을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HD현대중공업과 협력해 무탄소연료 엔진 기술 개발과 청정수소의 생산·활용 생태계 조성에도 나서고 있다.
둘째,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와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책임 있는 역할이다.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선도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모델을 개발하여, 글로벌 시장에서도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확산해야 한다. 동서발전은 괌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 발전소 건설 사업을 수주하여 생산전력의 50%는 주간 판매하고, 나머지는 ESS에 저장 후 야간 공급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제시했다.
셋째,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 계통 안정화와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한 기술개발이다. AI·빅데이터 기반 전력 수요·공급 예측 시스템을 구축하고, 통합발전소 및 장주기 ESS 기술을 도입하여 국가 전력망 운영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동서발전은 제주도에서 실시간 전력 수요·공급 예측 시스템을 개발하고 자체 통합발전소를 구축해 재생에너지 입찰제도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북촌에서는 국내 최초의 대규모 장주기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 발전소를 3월 착공할 예정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에너지산업계는 물론 지역 시민들의 생활과도 직결된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은 일상 편의를 위해 필수적이며, 무탄소에너지 확대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핵심 과제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에너지 전환은 정부와 공기업뿐만 아니라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 속에서 더욱 탄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새로운 전력시장의 변화가 우리 지역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하고,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동참해 주시길 바란다.
권명호 한국동서발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