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머무는 곳에 상업이 번성하고, 상업이 번성해야 도시가 살아난다.”
지금으로부터 250여년 전 조선 22대 왕인 정조가 한 말이다. 250여년 전에도 사람과 상업, 그리고 도시의 발전을 연계한 정책의 중요성을 논한 데 반해, 지금의 부동산 규제는 ‘규제’만 집중할 뿐 부동산이 가지는 본질과는 정반대의 흐름을 보이고 있어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다.
현재 지역 건설과 부동산 경기는 장기간의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사비 상승, 고금리, 미분양 확대로 인해 수많은 건설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거나 폐업하고 있으며, 지방 건설사의 줄도산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이는 소상공인과 서민들에게 더욱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경기침체와 고금리로 인해 자영업자들은 폐업 위기에 처했고, 건설업 종사자들은 생계를 위해 배달 등 다른 직종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방은 미분양과 상가 공실이 넘쳐나는데, 집값이 상승하는 서울 강남에나 해당하는 규제를 똑같이 받는다.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서울과 인구가 감소하는 지방이 똑 같은 지구단위계획으로 개발된다.
울산을 포함한 지방 도시에서는 청년 유출 문제가 심각하다. 김두겸 울산시장이 공공청년임대주택 공급과 ‘울산청년지원센터’ 출범 등을 통해 청년 유입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청년이 원하는 주거입지와 주거비용을 맞추기 위해 서울과 부산은 조례를 신설해 민간청년임대주택공급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반면 울산은 관련 제도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고령자를 위한 주거 대책도 부족한 상황이다.
상업과 의료 인프라를 갖춘 노인복지주택의 수요는 계속 상승하는데 울산에는 제대로 된 노인복지주택 하나 찾아보기 힘들다. 청년과 노년층이 원하는 주거환경은 중심상업지에 위치하는데 중심상업지역은 주택을 공급할 수 없는 실정이니 상업지역에서 영업하는 소상공인과 시민 모두 불만이다. 실제 경주 외곽 공단에 근무하는 청년들은 울산에 살고 싶지만, 거주비용으로 인해 경주 외곽지역 원룸을 전전하고 있다. 이들에게 울산 북구 내 적절한 청년임대주택이 공급된다면, 청년 인구 증가와 더불어 지역 상권도 활성화되지 않을까?
코로나19 이후 소비문화는 급격하게 변했다.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가 멀티플렉스를 대체했고, 회식 문화도 사라졌다. 이제는 주거지 인근에서 상업 활동이 이루어지는 시대다.
울산 내에서도 인구가 증가하는 북구와 감소하는 남구처럼 지역별 특성이 다르다. 그러나 현재의 도시계획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기에 민간에서 새로운 수요에 맞춰 시설을 공급할 수 있도록 각 지역에 맞는 보다 유연한 정책운영이 필요하다.
또한, 거주지역 내 필수적인 휴식 공간에 대한 정비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북구 매곡천은 박천동 구천장의 아이디어로 경관조명, 공연장 등을 갖추며 지역 주민들의 주요 산책로 및 휴식처 역할을 했으나, 최근에는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만큼 보다 세밀하고 적극적인 행정이 요구된다.
인구, 특히 청년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사회 흐름 속에서 우리 지역은 살아남을 수 있는 도시 경쟁력이 매우 중요해졌다. 지금 규제의 틀과 행정방향 만으로는 부족하다.
과거에는 용도지역 변경이나 용적률 상향이 민간 사업자에게 특혜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부동산 개발이 서울 강남을 제외한 전국에서 거의 멈춘 상태로, 공공과 민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공공은 지역 경제 순환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야 하며, 민간은 이에 상응하는 공공기여를 통해 지역사회에 공헌해야 한다. 현재의 경제 상황은 막혀 있는 혈맥과 같다. 이 고착된 흐름을 풀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다. 보다 적극적인 정책 추진과 규제 완화를 통해 울산이 주민이 만족하고 청년이 유입되는 도시로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정협 서호홀딩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