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우리는 글로 의사소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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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우리는 글로 의사소통 중
  • 경상일보
  • 승인 2025.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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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국 학성고등학교 교사

출근했다. 컴퓨터를 켰다. 업무 전달 메시지를 확인한다. 아이들에게 전달할 내용을 점검한다. 휴대폰 앱을 연다. 담임교사 단체 대화방에서 메시지를 확인한다. 학급 대화방에 안내할 사항을 복사해서 전달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모습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교실에서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줄고 있다. 문자를 통한 소통에 익숙하다. 나도 아이들도.

학교에서 3월은 관계를 세워가는 시기이다. 4월이 시작됐다. 4월은 관계가 다양하게 확장되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도 교실이 조용하다. 3학년 교실이라 유지되는 긴장감과는 다른 느낌이다. 아이들은 서로 어색하다. 물론 나도. 교실에 뭔가 부족하다.

말과 글은 인간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의사소통 도구이다. 말을 사용해 왔던 인간들은 문자를 개발했다. ‘말’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 다양한 도구를 개발해 왔다. 전화를 개발하고 유선에서 무선으로 기술을 발전시켰다. 마이크와 확성기를 개발했다. 공간을 확장해 소리를 전달할 수 있게 됐다. 더 나아가 소리를 저장할 수 있는 기술, 대화 상황을 녹화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드디어 말로도 시간과 공간을 완벽하게 극복해 의사소통할 수 있게 됐다. ‘말’을 문자로 변환되는 형태가 아니고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우리는 글로 의사소통 중이다. 일상생활이 어느새 문자로 이뤄지고 있다. 지금은 ‘말’보다 ‘글’로 대화하는 시대이다. 글은 실시간이라는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대화 방식이다. 기록이 남아 정확하게 전달된다. 언제든 대화에 참여하는 모두는 전달하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본인이 확인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 소통의 오류가 최소화된다. ‘말’이 일상생활에 소통의 도구로 사용되고 그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문자가 사용되면서 각각의 도구가 주로 사용되던 소통 영역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문자가 모든 소통의 주된 도구가 되고 있다. 글이 가진 장점으로 인해 일상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글은 말과 달리 정제된 행태의 표현 도구다. 일상생활을 위한 대화에도 글을 사용하면서 기록이 남는다는 점 때문에 우리는 일상대화에서조차 한 번 더 생각해서 표현하며 소통하게 된다. 정제된 방식의 의사소통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말로서 주고받는 상호성이 사라지고 있다. 너스레를 떨기도 하며 주고받던 역동적인 상호성이 줄어들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소통의 핵심은 상호성이다. 일상생활조차 글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깝다. 말이 가진 고유한 소통 방식과 역량을 의도적으로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로를 바라보고 마주하며 눈빛을 나눌 수 있게 해야 한다. 발화 과정에 작동되는 발화 맥락을 경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무조건 대화하기.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교육활동이다.

이현국 학성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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