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 연재소설]고란살[3] - 글 : 김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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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연재소설]고란살[3] - 글 : 김태환
  • 경상일보
  • 승인 2025.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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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끝내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서둘러 병실을 빠져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야속했다.

‘내 잘못이 아니었단 말이에요.’

남편의 등 뒤에 쏘아붙이고 싶은 말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내려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고가 난 시간이 문제였다. 자정을 훨씬 넘겨 새벽 두 시에 시내 외곽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사고가 났다. 운전자는 여자였고 조수석에 탔다 즉사한 사람은 여자의 직장동료였다.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기에 딱 맞는 사고였다.

남편과 아들이 병실을 나가고 나서 찾아온 사람은 친정엄마였다. 친정엄마가 김 과장의 사망 소식을 알려 주었다. 친정엄마는 나의 상태를 물어보기도 전에 그 소식부터 전했다.

나는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김 과장이 죽다니.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병수에비가 뭐라고 하던?”

친정엄마는 내 몸 상태보다는 주변의 일이 더 걱정인 모양이었다. 왜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남의 남자와 돌아다녔느냐고 묻는데 짜증이 났다. 짜증이 통증을 몰고 왔다. 얼굴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많이 아프냐?”

친정엄마는 그제야 병문안을 온 사람 같았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내가 더 이상 통증을 참기 힘들어 간호사를 불러달라고 할 때까지 꾸중 같은 잔소리는 계속되었다.

“이것아. 이만하기 다행인 줄 알아. 이번에 큰 액땜을 한 것이야.”

간호사가 들어와 진통제 주사를 놓을 때도 엄마의 잔소리는 계속되었다. 보다 못한 간호사가 엄마에게 제동을 걸었다.

“환자분은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태입니다. 너무 힘들게 하지 마세요.”

친정엄마는 그러는 간호사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쏘아보았다. 내 딸은 내가 더 잘 안다는 표정이었다. 내 딸은 이 정도로는 죽지 않으니 댁이 참견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엄마의 기준으로 보면 갈비 몇 대 부러진 것쯤이야 가벼운 상처였다. 엄마는 20m 높이에서 추락을 하고도 멀쩡히 살아남은 여자였다. 사람들 모두가 기적이라고 했다.

“누가 뭐라고 하든 휘둘리지 말고 꿋꿋하게 버티어야 한다. 알겠지? 나는 너 없이는 못 산다.”

엄마는 간호사가 나간 뒤 딱 한 마디를 보태고 병실을 나갔다. 마지막 한 마디가 짜증이 나던 마음을 모두 녹아내리게 했다. 진짜 내가 아니면 친정엄마는 하루도 버티지 못할 사람 같았다.

엄마의 삶을 생각해보면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저절로 떠오른다. 나에게 가끔씩 넋두리를 하던 외할머니야말로 제대로 고란살이 낀 여자였다.

글 : 김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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