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한 존재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

시를 읽고서 복숭아꽃도 겹꽃이 있음을 알았다. 이런 겹복숭아꽃을 만첩도화라고 한다는 것도. 붉은 만첩홍도화, 흰 만첩백도화. 그러니까 내가 올봄 어느 고을을 지나며 홍매화나 사과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복숭아꽃이었다. 한 나무에 분홍, 흰, 붉은 꽃이 피는 삼색도화도 있다.
시인이 본 복숭아꽃도 삼색도화 같다. 분홍과 흰빛으로 겹겹이 싸인 복숭아꽃을 시인은 아름다움과 외로움이 공존하는,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가진 존재로 본다. 복숭아꽃은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러니까 표현하고 싶은 삶의 욕망과 의지가 넘치지만, 그 속에 고독을 감춘 존재이기도 하다. 이렇게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을 지녔기에 쉽게 다가가긴 어려울 것이다.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도 이런 마음속의 거리감을 나타낸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볼 때, 어느 정도 거리 두기를 하고 볼 때 존재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그리고 감정의 들끓음이 가라앉는 ‘저녁이 오는 시간’ 드디어 복숭아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참 오래 걸렸지만 한 존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그런 거리, 그런 시간, 그런 그늘도 필요한 법이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