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신록의 사월을 만끽하길
잔 들고 혼자 앉아 먼 뫼를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움이 이러하랴
말씀도 우움도 아녀도 못내 좋아 하노라
-‘만흥’의 6수 중 셋째 수

꽃이 아무리 아름답기로 사월의 신록만 하랴. 청춘이 아무리 빼어나기로 중년의 여유만 하랴. 인생은 언제나 지금이다. 계절도 마찬가지 저 꽃 지고 나면 무슨 재미로 살며 이 봄 가면 무슨 멋으로 살지 싶다가도 오늘 아침 저 산 푸르름에 문득 인생은 지금이라는 생각에 눈이 번쩍 뜨인다. 만화방창 꽃 지고 잎 피고 드디어 신록의 계절이다. 바다에만 물결이 이는 것이 아니다. 멀리 산을 바라보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신록의 물결은 더욱 신선하다. 그 누구도 가는 세월을 붙들지는 못한다. 왕후장상도 그 누구도 가는 세월을 타고 그냥 갈 뿐이다. 끝내 가고야 만다. 그냥 간다.
하루하루 나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길가에 민들레도 골목으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에도 봄은 향기롭고 은혜로운지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 다 자연의 봄 축제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고루고루 평등하게 내려주는 이 은혜로움에 눈물 찔끔 닦아도 좋을 그런 날들이다. 봄 사월이다.
우리에겐 우리말이 있어, 우리글이 있어, 먼저 살아간 선인들이 펼쳐 놓은 시조 가락으로 시를 짓고 노래하는 오늘이 있어 또한 축복의 터다. 봄은 봄이라서 겨울은 또 겨울답기로 살맛 나는 그런 땅에 그런 자연 속에 자손만대로 물려줄 이 토양 위에서 우리는 자신을 가꾸며 살아간다. 축복의 나날을 축복인 줄도 모르고 힘들다고 칭얼대기만 한다.
인생 백 년을 사나 육십을 사나 억겁의 시간에 비하면 거기서 거기다. 한순간을 살아도 자신에게 충실한 삶이야말로 그게 인생이다. 자신에게 충실하다는 말이 혼자서만 다 가지고 행복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숨 탄 목숨으로 고귀한 명을 타고 난 존재로서 또한 이 지구 위에 나와 똑같은 생명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생명 탄 목숨으로 맨 먼저 하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다. 의무이기 전에 본능적 욕망이다. 욕심만으로 자식 기르는 것도 아니다. ‘잘 낳으려는 딸 언청이 낳는다’고 하지 않던가. 제 명복은 스스로 타고나는 것이다.
고산 윤선도 시인은 먼 산 바라보기를 그리운 님이 오신다 한들 이리 반갑겠냐고 읊고 있다. 아마도 오늘 같은 사월 어느 날이었을 것 같다. 한분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