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은 작업 중에 당한 추락사고였다. 엄마가 추락한 높이는 자그마치 20m였다. 그 높이에서 추락하고도 살아남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때마침 추락지점 아래로 보온덮개를 실은 트럭이 지나갔다. 엄마는 트럭 화물칸의 보온덮개 위로 떨어졌다. 척추가 부서지기는 했어도 생명은 건질 수 있었다.
사고 후의 엄마의 삶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시 받은 목숨이라 생각해서인지 매사에 더 적극적이고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매주 주말이면 남목에 있는 동축사에 다녀왔다.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느냐며 모든 것을 감사로 돌렸다.
동축사에 다니고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낸 사실인데 엄마의 기도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감사의 기도가 아니었다. 엄마의 기도는 오로지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 사실은 제주도 여행에서 나에게 직접 들려준 것이었다.
“너는 나나 외할머니처럼 살아선 안 돼. 고란살은 나에게서 끝이어야 해. 내가 동축사 부처님에게 비는 게 바로 이거야. 그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나를 받아주었으면 더 이상 못 볼 꼴은 보지 않게 해주실 거야.”
나는 어릴 적 외할머니에게 들었던 고란살이란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엄마의 머릿속에도 그런 황당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었다. 외할머니가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것과 엄마가 남편을 바다에 보낸 것이 어찌 여자의 운명 때문이었을까. 외할머니와 엄마는 남편을 잡아먹은 년이란 굴레에 갇혀 자신을 학대하며 살아온 것 같았다.
엄마의 정성은 동축사에 다니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한 번은 화투장 크기의 부적을 가져왔다.
“이걸 병수아범 수첩에 몰래 넣어 놔라.”
나는 기겁을 했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남편은 거의 일 년이 지나서 수첩 뒷면에 끼워져 있는 부적을 발견했다. 나는 곧바로 친정엄마의 부탁이라 어쩔 수 없었음을 털어놓았다.
“장모님도 참 어지간하셔.”
“다 당신을 염려해서 하시는 일이니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
남편은 더 이상 부적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엄마의 극성에 익히 길들여진 남편이었다. 녹용이 나는 계절엔 남편을 데리고 경주에 있는 사슴목장에 갔다. 사슴목장에서 제일 튼튼해 보이는 놈으로 골라 뿔을 자르고 생혈을 마시게 했다. 사슴피와 녹용을 복용한 남편은 식욕이 당기는 지 몇 달 후엔 체중이 눈에 띄게 불었다.
녹용이 전부가 아니었다. 몸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구해다 먹였다. 해마다 강원도에 산다는 심마니가 진짜배기 천종산삼이라는 것을 집으로 가져왔다.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남편은 싫다는 내색도 없이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데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걸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남편이 얄밉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의 지극한 사위 사랑 때문에 내가 덕을 보는 것도 많았다. 나는 남편에게 신경을 좀 덜 써도 되었고 그 덕분에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