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산업안전의 최전선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수많은 사고 현장을 마주했고, 때로는 규정이 무너진 현장을, 때로는 규정을 지켰음에도 문화가 부재해 무너진 현장을 지켜보았다. 그 과정을 통해 필자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안전은 단순히 규정을 지키는 문제가 아니다. 안전은 곧 그 조직의 문화다.” 촘촘한 규정과 완벽한 지침만으로는 결코 안전을 지킬 수 없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안전의 문화’가 뿌리내리지 않으면, 언젠가는 작은 빈틈이 무너지고, 그 틈이 생명을 앗아간다.
영국과 독일은 이러한 진실을 일찍이 깨달은 나라들이다. 영국은 1974년 ‘보건안전법(Health and Safety at Work Act)’을 제정하며 안전을 ‘법’이 아니라 ‘조직문화’와 ‘책임의식’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독일은 ‘예방이 최선의 치료’라는 신념 아래, 일상 속에 안전을 스며들게 했다. 그들은 안전을 강제하지 않았다. 대신 ‘자율적 책임’과 ‘집단적 존중’을 통해 스스로 안전을 지키게 만들었다.
필자가 꿈꾸는 안전은 두려움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걸리면 처벌받는다”는 공포가 아니라, “서로를 지킨다”는 존중과 배려에서 시작하는 문화다. 함께 일하는 동료를 위해, 나 자신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내 가족을 위해. ‘나 하나쯤이야’를 버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를 품는 문화. 그런 문화 속에서는, 모든 헬멧이 소중하고, 모든 안전대가 당연하며, 모든 작업 중지가 용기가 된다.
영국의 많은 기업들은 아침 조회 때마다 ‘하루 한 가지 안전 약속’을 서로 나눈다. “오늘은 동료의 추락을 막겠다.” “오늘은 내가 먼저 위험을 알리겠다.” 이 작은 약속들이 존중과 신뢰의 문화를 만든다. 독일에서는, 작업자가 설령 생산을 멈추더라도 “안전을 위해 멈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칭찬받는다. 그들은 말한다. “사고는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실패다.”
이 인식이 존중과 신뢰를 뿌리내리게 한다.
필자는 알고 있다. 사고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을. 그러나 믿는다. “사고를 숨기지 않는 문화가 진짜 안전을 만든다.” 잘못을 덮지 않고, 작은 실수도 드러내 함께 배우는 문화. 위험을 발견하면 숨기지 않고 알릴 수 있는 문화. 비난이 아니라 개선으로 이어지는 문화.
영국은 ‘Near Miss Reporting(아차사고 신고)’ 제도를 정착시켰다. 실제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사소한 위험까지도 공유하고 학습한다. “숨기지 않는 용기”가 바로 안전을 키우는 씨앗이 된다. 독일 또한 ‘개선제안제도(Vorschlagswesen)’를 통해, 누구나 자유롭게 위험 개선을 제안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작은 제안 하나가 큰 사고를 막는다는 믿음이 있다.
필자는 현장에서 자주 이런 말을 들었다. “안전은 안전관리자의 일이죠.” 그러나 필자는 단호히 말한다. “진짜 안전은 모두의 일이다.” 일하는 사람 한 명, 현장 관리자 한 명, 경영자 한 명. 모두가 ‘안전의 주인’이어야 한다. ‘내 일’로 느끼는 순간, 현장은 달라진다.
영국과 독일은 모두 ‘Top-down’ 지시뿐만 아니라 ‘Bottom-up’ 참여를 중시한다. 현장 노동자에게 권한을 주고, 위험을 느끼는 즉시 생산을 중단할 수 있도록 권리(Stop Work Authority)를 보장한다. “위험하다면, 멈춰라.” 이 당연한 권리가 모두를 주인으로 만든다.
결국, 필자가 말하는 안전은 ‘사람을 중심에 두는 문화’다. 생산성보다 사람, 비용 절감보다 생명, 편의성보다 존중. 사람이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이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필자는 숫자나 규정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이야기한다. “한 생명은 세상의 전부다.” 이 신념 하나로, 필자는 오늘도 안전을 말하고, 안전을 꿈꾼다.
규정이 아닌 문화로서의 안전. 두려움이 아니라 존중에서 시작하는 안전. 사고를 숨기지 않고 개선하는 문화. 모두가 주인이 되는 문화. 사람을 중심에 두는 문화. 필자는 믿는다. 이 다섯 가지가 한 현장, 한 회사, 한 사회에 스며들 때, 비로소 “사람이 먼저인 안전”, “삶을 지키는 문화” 가 꽃필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뚜벅뚜벅,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다.
정안태 울산안전(주) 대표이사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심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