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며칠은 회사 사람들이 병문안을 왔다. 바로 같은 건물의 지하 장례식장에는 김 과장이 안치되어 있었다. 더러는 장례식장에 들른 김에 병실에 들렀다. 모두 김 과장이 안 되었다는 말과 함께 나는 부처님이 돌보았다고 했다. 김 과장의 장례가 끝나고 나니 아무도 병실을 찾아오지 않았다. 병실을 찾아오는 사람은 엄마가 유일했다. 친정엄마는 아침에 동축사에 갔다가 점심 공양을 하고 병원으로 왔다.
이상한 것은 병원에 입원한 지 열흘이 지나도록 남편과 아이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남편뿐만 아니라 시집 식구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물론이고 가까이 살고 있는 시누이도 오지 않았다. 남편에게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아들에게 전화했더니 울기부터 했다.
“엄마 보고 싶어요. 아직 많이 아파요?”
“이제 안 아파. 엄마가 보고 싶으면 병원으로 와야지.”
“갈 수가 없어요.”
아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뚝 끊겼다. 다시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나는 친정엄마에게 남편과 아이의 근황을 물었다. 전화로 대답하기는 곤란하니 병실에 찾아와 말하겠다고 했다. 도대체 전화로는 말 못 할 것이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날 오후에 보험회사직원이라는 사람들 둘이 찾아왔다. 나는 먼저 찾아왔던 경찰관들이 생각났다. 무슨 질문을 하더라도 동요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돌아가신 김 과장님은 참 안 되었습니다. 차장님도 몸도 몸이지만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나는 위로의 말인지 뭔가 속을 뒤집어 놓을 말을 하려는 사전 포석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보험사 직원은 세간에서 이 교통사고에 대해 말들을 많이 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밤 두 시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 말들을 많이 하지만 저희는 두 분의 인격을 믿습니다.”
과연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관들처럼 몇 호실에서 나왔느냐고 노골적으로 묻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기가 막혔다. 죽은 김 과장이 거액의 보험에 가입했다는 것이었다.
“그날 안 차장님은 술을 한잔도 안 드셨다고 하셨죠?”
“그래요. 저는 원래 술을 한 잔도 못 마셔요.”
“본인이 핸들을 잡았던 게 확실합니까?”
“그럼요. 김 과장은 만취 상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