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의 예술성에 드는 경외심
까마득한 돌 속에서 비명 소리 달려온다
돌도끼 날을 벼린 선사의 갈기를 잡고
장엄한 생사生死의 초침이 내 이마에 꽂힌다 -시조집 <꽃의 약속>

약 7000년 전 태화강이 동해로, 태평양으로 흘러가는 이 땅에 살았던 그 누구가 아무것도 없는 바위에다 고래 그림을 그렸다.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공간, 삶을 기록하고 제의를 올린 곳이다. 인간이 바다를 대상으로 기록한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고래 사냥 기록 공간이다.
선사인들의 삶을 바로 보는 듯한 생생한 새김, 기록적 가치를 너머 미적 회화적인 점으로만 봐도 지금 그 어느 화가가 이처럼 리얼하면서 생략된 특징을 살려 그리고 쫄 것인가. 반구대에 바다를 세긴 그 회화적 기법에 우리는 갈수록 놀라고 있다. 성공적인 사냥 후에 예술적 기량으로 삶을 오롯이 담아 새긴 것이다. 그러나 기록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태화강 유역은 굴화리까지 바닷물이 들어와서 반구대 앞까지 고래가 들어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몇 대의 선단을 이뤄 멀리 동해 극경회유해면으로 나가 반구대 앞으로 고래를 몰아왔을 것이다. 작살 박힌 고래뼈를 보면 그들의 고래사냥 실력을 충분히 집작 한다. 통나무로 만든 배에는 열 대 여섯 명이 타고 있다. 그물 던지는 사람, 작살 던지는 사람 등 다양하게 새긴 것이다.
국보 제285호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가 국보 제147호인 천전리 각석과 더불어 오는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전망이다. 7000년 전 신석기시대에 이뤄진 울산 반구천 암각화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그림 새김이다.
이 땅에 먼저 살다 간 최초의 화가들께 회화적 예술성에 머리를 조아린다. 평상시에는 빛에 반사돼 잘 보이지 않다가도 해가 지기 직전 비춰지는 빛의 각도에 따라 더욱 선명한 새김, 특정한 시간에 그림이 더 잘 보이도록 암각돼 있다. 빛의 예술임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까마득한 돌 속에서 비명 소리 달려온다’라고, ‘선사의 갈기를 잡고’의 표현으로 필자는 그 시대 선사인들의 돌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 생생한 표현으로 시조를 쓴 것이다. 이 땅에 먼저 살다 간 예술인, 선사인을 따라 진정한 예술인이 되고 싶은 필자의 소망이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