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 연재소설]고란살(10) - 글 : 김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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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연재소설]고란살(10) - 글 : 김태환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5.06.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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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는 여전히 통화가 되지 않았다. 병실에서 간접적으로 들려오는 소식에도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떤 남자가 자기 부인이 밤 2시에 외간 남자와 같이 차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했는데 좋아하겠는가. 이번에도 사고만 아니었으면 밤늦게 들어온 것을 탓할 남편은 아니었다. 나와 김 과장과는 해외 출장도 함께 다녀온 사이였다.

문제는 김 과장의 죽음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밤 두 시에 일어난 교통사고에 대해 말들을 많이 하는 모양이었다. 누구보다도 마음에 걸리는 사람은 가까이 살고 있는 시어머니와 올케였다.

보험회사 직원이 다녀간 다음 날 시어머니가 병실에 찾아왔다. 사고가 난 후 처음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아픈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시어머니는 그냥 누워 있으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으라고 권해도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무리 봐도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꼴이 보기 좋구나.”

“….”

병문안을 와서 할 말이 아니었다. 입 안에서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려다가 도로 들어갔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고개를 밖으로 돌리기에 그대로 나가려는 줄 알았다. 정면으로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옆자리의 빈 침대를 바라보며 툭 한 마디 던졌다.

“더 이상 신경 쓸 거 없다. 깨끗하게 정리하거라. 내가 창피해서 못 살겠다.”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것이 이혼하라는 말인 줄 알아들었다. 너무나 의외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며느리에게 이혼이라니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었다.

‘내가 교통사고를 내고 싶어서 냈나요.’하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이미 문제는 교통사고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대답을 하지 못하고 허공만 쳐다보았다. 시어머니는 그런 내 얼굴을 한번 슬쩍 쳐다보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병실을 나갔다.

시어머니가 낮에 다녀간 뒤 저녁에 남편이 찾아왔다. 병수는 데리고 오지 않았다. 표정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의 얼굴을 보자 아들이 보고 싶었다.

“병수는요? 데리고 오지 그랬어요.”

“애는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말라니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아이에게 도대체 뭐라고 그런 거예요. 전화를 왜 안 받아요?”

남편은 대답도 하지 않고 들고 온 가방을 열더니 서류 몇 장을 꺼내 내 앞에 내밀었다. 이혼 합의서였다. 속으론 움찔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거 진심이에요?”

“지금 장난하는 건 줄 알아?”

남편이 언성을 높였다. 같이 언성을 높이려고 마음먹은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싸움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났다. 아파서 누워 있는 사람에게 위로는 못 해줄망정 화를 내다니 억울했다. 설령 이혼할 마음을 가졌더라도 퇴원이라도 한 다음에 해야 하는 것이 도리였다.

“긴말은 하지 않겠어. 여기 합의 내용을 잘 읽어보고 도장 찍어줘. 내일 다시 들릴게.” 남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하고 병실을 나갔다.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눈물이 나왔다. 아프면 서럽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점점 설움이 복받쳐 올랐다. 목구멍에서 엉엉하는 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울음소리를 듣고 놀란 간호사가 뛰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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