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내면과 세상이 낳은 다양한 질문을 드러내는 예술이 미술이다. 그중에서도 현대미술은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가는 생과 고뇌를 담고 있다. 전통적인 형식을 넘어선 실험과 표현으로 삶의 본질을 탐구한다. 예술가들은 개인은 물론 인류 공동체의 운명을 통찰하며, 그 메시지를 작품에 녹여낸다. 현대미술에서 운명이라는 주제가 어떻게 예술로 탄생 되었는지 살펴보겠다.
첫 번째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는 현대미술에서 인간의 내면적 불안을 가장 강렬하게 표현한 화가로 손꼽힌다. 작품 ‘절규’(The Scream)는 자신의 운명과 마주할 때 느끼는 공포와 고독을 강렬하게 시각화한 창작물이다. 운명과 절망의 부각이다. 뭉크는 작품의 배경이 된 순간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중략) 그 순간, 자연의 거대하고 무한한 비명을 들었다.” 이러한 경험을 그림으로 옮겼다. 간단한 장면 묘사를 넘어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나타내었다. 절규 속의 인물은 얼굴을 감싸 쥔 채 소리 없는 외침을 토해낸다. 작품에서 운명이란 인간의 통제 밖에 있는 무언가이며, 그것이 때로는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암시한다. 동시에 운명 앞에서도 예술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희망의 가능성도 남기고 있다.
두 번째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현대미술의 선구자로서 개인적, 사회적 운명을 작품에 담아냈다. 작품 ‘게르니카’(Guernica)는 미래를 직면한 혼란으로 인간의 운명과 역사적 비극을 탐구한 걸작이다. 게르니카는 1937년 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 독일의 공습으로 초토화된 바스크 지방의 마을 게르니카를 소재로 하고 있다. 작품은 단순한 전쟁 기록이 아니다. 전쟁이라는 파괴 앞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생생히 드러낸다. 그림에서 찢겨진 몸, 울부짖는 여성, 죽은 아이를 안은 어머니는 운명의 폭력성과 인간의 무력함을 상징한다. 하지만 게르니카는 절망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캔버스 상단의 빛나는 전구 모양의 눈은 진리와 희망을 표상한다. 비극 속에서도 현실을 직시하며 저항하고 연대할 가능성을 암시한다.
세 번째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은 초현실주의의 거장으로 운명을 시간과의 관계 속에서 탐구했다. 작품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은 유동적으로 그의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시계에서 과거와 욕망의 본질을 묻는다. 작품은 사람이 느끼는 시간의 상대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계는 견고하지 않고, 물질적으로도 유한하며, 그 자체로 운명의 불확실성과 유동성을 상징한다. 그의 세계에서 시간은 결코 정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상상력과 선택에 따라 객관적 시간개념이 주관적 개념으로 변할 수 있다. 그림은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 정신의 자유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네 번째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는 현대 도시인의 고독을 그린 화가로, 작품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은 밝은 불빛의 식당에 앉아 있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적막감과 삶의 덧없음을 비유한다. 단절감과 소외감을 나타낸다. 그림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운 도시 풍경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깊은 고립감과 정체된 시간을 내포하고 있다. 식당 안의 사람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으며, 그들의 존재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불확실성을 암시한다. 그는 현대 사회의 익명성과 거리감에서 운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리는 개인의 모습을 탐구했다.
현대미술에서 운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역사, 시간, 그리고 감정의 교차점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주제다. 에드바르 뭉크는 운명을 공포와 고독의 감정으로 표현했고, 피카소는 역사적 비극 속에서 저항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달리는 시간의 상대성을 통해 운명의 본질을 탐구했으며, 호퍼는 현대인의 고독 속에서 운명의 조각을 드러냈다. “운명을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현대미술은 스스로 그 답을 찾도록 유도하고 있다. 운명의 발걸음은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방향과 모습의 형상화는 각자의 상상에 달려있다.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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