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득 부족 못지않게 금융 문해력 격차도 큰 문제다. 30~40대는 국내외 ETF 및 펀드 등을 이용한 분산투자 개념에 익숙하다. 반면 고령층 상당수는 은행 예금 위주의 자산 운용에 머물러있다.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저금리 상품에 자산을 묶어 두거나, 반대로 고수익을 약속하는 사기에 속아 재산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 금융 소비자 보호재단 조사에 따르면 투자 사기의 경우 60~70대 피해자의 60% 이상이 전혀 회수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개인의 불행을 넘어 사회 전체의 복지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해법의 첫걸음은 연금 3층 구조를 제대로 갖추는 것이다. 국민연금이라는 최소한의 안전망 위에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더해 균형을 만들어야 한다. 퇴직연금은 2022년부터 도입된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을 활용해 장기 분산투자가 자동으로 이뤄지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연금은 세제 혜택을 적극 활용하고 조기에 가입해 복리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은퇴 시점에 “자산을 잃으면 안된다”라는 불안감 때문에 전체 노후자산을 한꺼번에 예적금 등 안전자산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오히려 물가 상승 위험(인플레이션 리스크)에 노출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생활비와 의료비 등 필수 지출은 예금, 보험 등 안정적인 현금흐름으로 대비하되 일부 자산은 배당주, 글로벌 ETF, 물가연동채권(TIPS 등) 배분해 인플레이션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 사례에서도 확인되듯 은퇴 이후에도 일정 비율의 주식형 자산을 유지하는 전략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자금을 마련하는데 유리하다.
중장년층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금융 교육을 제도화해 연금 제도에 대한 이해와 자산관리 역량을 높이는 정책도 시급하다. 동시에 장기요양보험, 실손보험 등 고령기에 필수적인 지출을 보완할 공적, 사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노후 빈곤은 개인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고, 의료비와 복지 지출 증가라는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노후 설계는 은퇴 직전에 서둘러 챙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30~40대부터 조금씩 준비해 둬야 70대 이후의 삶이 여유로울 수 있다. 작은 저축과 꾸준한 투자 습관이 먼 미래의 존엄한 삶을 결정한다. 한국이 초고령 사회로 들어서는 지금, 금융 노후 설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가장 현실적이고 절박한 과제다.
강민정 BNK경남은행 굴화금융센터 P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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