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중 무역전쟁 격화로 전략 광물 공급망 안정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고려아연이 반도체 핵심 소재인 게르마늄에 이어 갈륨 생산 시설 신설에 나섰다. 글로벌 갈륨 시장의 98% 이상을 중국이 장악한 상황에서 고려아연의 이번 투자 결정은 국내 자원 안보 강화와 글로벌 공급망 안정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행보로 평가된다.
고려아연은 2027년 12월까지 약 557억원을 투자해 울산 온산제련소 내에 갈륨 회수 공정을 신설한다고 19일 밝혔다. 신설 공장은 2028년 상반기 시운전을 거쳐 본격 상업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며, 연간 약 15.5t의 갈륨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통한 기대 수익은 연간 11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사내 연구소와 기술진을 중심으로 고도화된 회수 기술 상용화에 성공해 공장 건설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며 “향후 시장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경우 수익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갈륨은 중국의 수출규제 이후 가격이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갈륨은 반도체·태양광 패널·레이저·LED 등 첨단산업 전반에 사용되는 핵심 광물이다. 한국은 자원안보특별법에 따라 갈륨을 국가가 특별관리하는 33개 핵심 광물 중 하나로 지정하고 있으며, 미국 역시 ‘에너지법’상 핵심 광물(Critical Minerals)로 분류해 안보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세계 갈륨 생산량의 98.7%를 중국이 담당하고 있어 공급망 불안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한국 역시 갈륨 수입의 7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2023년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을 제한하고, 대미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단행하면서 글로벌 첨단산업 전반이 큰 영향을 받고 있다.
고려아연은 이번 공장 신설로 국내 유일의 전략 광물 생산 거점을 강화함과 동시에 부산물로 또 다른 전략 광물인 인듐을 연간 16t 이상 추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인듐은 반도체·디스플레이·재생에너지 산업에 필수적인 희소금속으로, 최근 5년간 가격이 2배 가까이 오르는 등 공급망 불안이 심화된 품목이다. 고려아연은 현재 연간 약 150t의 인듐을 생산하며 전 세계 수요의 약 11%를 공급하고 있다.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 8월 최윤범 회장이 한미 정상회담에 경제사절단 자격으로 참석해 미국 방산기업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공급·구매 및 핵심 광물 협력 MOU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오는 2028년까지 온산제련소에 게르마늄 생산 공장을 완공, 연간 10t 규모의 생산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중국의 수출통제와 전 세계적인 공급망 불안으로 전략 광물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국내 유일의 전략 광물 허브로서 기술 자립도를 높이고 글로벌 공급망 안정에 적극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오상민기자 sm5@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