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수도 울산 경제의 동맥인 중소기업의 맥박이 점점 약해지는 모습이다. 겉으로는 실업자가 줄고 취업자는 늘어나는 ‘완전고용’에 가까운 수치를 보여주지만, 정작 현장 곳곳에선 열악한 근로환경에 인력난까지 겹치며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중소기업 CEO들은 “문닫는게 돈 버는거다” “금융권 문턱은 높고, 영업수지는 낮아져 파산직전이다” 등 볼멘소리가 잇따른다. 몇몇 지방산단은 노후화·슬럼화되면서 명맥만 유지한다. 기술과 인력, 자금 모두 고갈 위기에 처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울산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강한 중소기업에서 시작된다. 본보는 울산 경제 근간을 이루는 중소기업의 실태를 파악해 다시 뛰는 산업수도의 해법을 모색해본다.
기업 경쟁력의 또 다른 바로미터는 ‘좋은 일자리 환경’이다. 과연 울산 중소기업 상황은 어떨까. 일자리 상당수가 비정규직과 노인일자리로 채워지고, 제조업 기반 조선업 중심의 고용 구조는 여전히 고착돼 있다. 산업수도의 간판이 ‘불안정 고용의 도시’로 인식될 것이란 부정적 시그널이 감지된다.
◇울산 완전고용 통계의 착시
23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울산의 취업자는 57만5000명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1000명(0.2%) 증가했다. 실업자는 9000명으로 1년 새 8000명(-48.2%)이나 줄었고, 실업률은 1.5%를 기록하며 전년 동월 대비 1.3%p 하락했다. 수치만 보면 완전고용에 근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고용의 질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경제활동인구조사로 범위를 따져보면, 비정규직 근로자는 17만3000명이다. 비정규직과 관련한 통계가 작성된 2003년 8월 이후 최대치다. 반면 정규직은 30만5000명으로 전년보다 2000명 증가에 그쳤다. 이들 간 임금격차는 180만8000원으로 이 역시 역대 최고치로 벌어졌다.
고용률은 59.8%로 0.2%p 하락했고, 15~64세 기준(OECD 비교) 고용률은 66.6%로 0.5%p 상승했다. 남성 고용률은 72.1%로 1.3%p 올랐지만, 여성 고용률은 47.4%로 1.6%p 떨어져 전체 지표를 끌어내렸다. 제조업 도시로서 여성의 일자리 악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와 5개 구·군은 지난해 일자리 창출 8만6130명으로 목표(7만1473명) 대비 120%를 달성했다. 하지만 이 성과의 대부분은 노인일자리 확대가 주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공공부문 직접일자리와 사회활동 지원형 사업이 전체 창출 인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올해 역시 일자리 목표가 상향됐지만 고령층 사회활동 지원 인원 확대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반면 청년층 고용 상황은 여전히 부진하다. 지난해 울산의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7.7%로, 전국 평균(2.8%)의 2.7배 수준을 기록할 정도로 청년 실업 문제는 더욱 대두되고 있다. 겉으론 고용률이 올랐지만, 실제로는 노년층이 일자리를 채우고 청년층은 일터를 떠나는 구조적 역전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중소기업 인력난과 청년유출
가장 극단적인 예시를 울산 동구로 들 수 있다. 조선업 호황이 동구 지역 고용을 견인하고 있지만, 늘어난 일자리 대부분이 협력업체 단기직과 외국인 인력으로 채워지고 있다. 조선소에는 최근 들어 동남아 출신 용접공·도장공 등 외국인 노동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무덕 현대중공업사내협력사협의회장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내국인 숙련공 복귀로 단기 인력 차질은 없지만, 젊은층 유입이 거의 없어 세대교체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역 중소기업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생산업체들 역시 인력 수급 문제를 지적한다.
A업체 관계자는 “숙련공을 구하려 해도 수도권 업체로 다 빠져나간다. 임금은 비슷해도 근무 환경이나 생활 인프라가 불리하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울산 중소기업 곳곳에서 인력난을 호소하는 기업이 여전한 현실이다.
이는 자본집약적 기업 등을 찾아 떠나는 울산 청년층의 이탈이 주요 요인이다. 실제 지난 2분기 동안 지역 청년층(20~30대) 순이동 인구는 20대 -283명 30대 -106명으로 전출이 전입보다 크게 많았다. 청년층 순이동 인구가 -389명으로 집계되는 등 청년 순유출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순이동률 -0.6%로 이는 40대(-0.3%), 50대(-0.4%), 60세 이상(-0.4%) 등 연령별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지역 산업 현장의 인력난과 맞물리며 울산이 청년층에게 ‘떠나는 도시’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정아 울산동구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장은 “울산의 인력 양극화 문제는 특정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전체의 구조적 문제”라며 “대기업들이 단기 하도급 중심의 외주 구조에 머물지 말고, 지역 안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더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상민기자 sm5@ksilb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