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작가의 의무, 관객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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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생각]작가의 의무, 관객의 선택
  • 경상일보
  • 승인 2025.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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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울산젊은사진가회 대표

연말이 다가오니 올 한 해의 결실이 도시 곳곳에서 체감된다. 예술 분야 역시 1년간, 혹은 더 오래 준비해 온 작업이 가장 많이 발표되는 시기다. 그 가운데 지금 소개할 두 전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 결과물을 제시한다.

첫 번째 전시는 울산 중구 원도심의 유휴공간인 안젤여성사우나에서 진행 중인 ‘기억이 흐르는 강, 공존을 향한 수로’로, 예술 프로젝트팀 ‘오프리버스’가 기획했다. 태화강의 생태 서사를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상상하는 미래 서식지를 설치·미디어·사운드·회화·향기까지 오감의 층위로 풀어냈다. 전시는 오랫동안 비어 있던 오래된 목욕탕을 정비하는 일에서 출발했고, 오프닝의 도슨트와 디제잉이 더해지며 감각적 장소성을 완성했다. 공간의 물리적 흔적이 작품과 교차하며, 전시장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두 번째는 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진행 중인 ‘내가 서있는 길’로, ‘젊은사진가협회 고투’가 주관한 전시다. 대구를 기반으로 하는 신진 기획자와 청년 사진가들이 준비했으며, 사진 디스플레이의 자유로운 시도와 다양한 방법을 통해 개인 서사를 시각화했다. 완결된 이야기보다 현재 진행형의 감정과 고민을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공감을 끌어낸다.

두 전시는 모두 지역 재단의 예술 지원 사업에 선정된 프로젝트로, 서로 다른 도시와 세대가 각자의 언어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인상적인 이유도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울산의 전시는 장소의 기억을 작품의 논리로 전환하는 능숙한 기획과 총체적 설계로 설득력을 얻었다. 대구의 전시는 청년들의 현재 경험과 감정을 사진적 실험으로 증언한다. 공통점은 예산 제약 속에서도 최초 기획의 핵심을 훼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체 예산을 보태거나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며 비용 효율을 찾되, 핵심 개념·작품 구성·현장 완성도를 최대한 유지하려는 노력이 읽힌다. 지원금은 말 그대로 창작을 위한 비용이어야 하며, 창작의 근본에 쓰일 때 완성도와 밀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두 전시가 증명한다. 이 과정에서 협업의 조직력과 제작·운영의 우선순위를 가려내는 기획 역량이 더욱 도드라졌다.

이 지점에서 예술가의 의무와 관객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따른다. 예술가는 시대를 읽고 자신의 언어로 말하며, 한발 앞서 세계를 증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기획을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가 중요하다. 또한 지원의 쓰임을 투명하게 기록하고, 작품의 맥락을 관람자에게 명확히 안내하는 일 역시 기본이다. 예술가는 작품이 명확하게 보이도록 끝까지 설계·관리할 의무가 있으며, 관람객은 작품과 공간을 존중하고 사려 깊은 질문과 피드백으로 의미의 완성에 참여할 의무가 있다. 최종적인 예술 과정의 완성은 관람객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전시장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고, 다양한 의견으로 소통해 주기 바란다. 예술가들의 작품은 예술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결국 시민의 발걸음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는 일은 세상을 읽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다.

김지영 울산젊은사진가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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