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수 변호사의 울산, 법 이야기]산업수도 울산의 미래는 ‘안전’ 위에 세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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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수 변호사의 울산, 법 이야기]산업수도 울산의 미래는 ‘안전’ 위에 세워져야 한다
  • 경상일보
  • 승인 2025.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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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수 변호사

울산 화력발전소 해체 공정에서 발생한 붕괴 참사는 또 하나의 산업재해로만 기록될 일이 아니다. 이 사고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히 ‘안전관리의 실패’가 아니다. 이는 울산이라는 도시의 미래가 어떤 토대 위에서 구축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기업이 무엇을 ‘의무’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 사건이다. 산업의 발전은 언제나 위험과 함께 자라지만, 위험을 통제하는 능력 역시 산업의 수준을 결정하는 필수 요소라는 점을 이번 사고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울산은 산업수도로서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을 담당해 왔다. 산업도시라는 정체성은 생산 규모나 기술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산업도시가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사람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번 붕괴 사고는 우리 산업 현장의 공통된 취약점인 다단계 외주 구조, 형식적 위험성 평가, 형해화된 감리 제도 등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외형적 성장과 경제 규모는 세계적 수준일지 몰라도, 안전 시스템을 지탱하는 내부 구조는 여전히 취약하다는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법률적으로 이번 사고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발주자의 책임’이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는 점이다. 기존 산업안전법 체계는 현장 작업자에게 가까울수록 책임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해체공정과 같이 구조물의 안정성이 본질적으로 떨어지는 고위험 작업에서는, 작업자보다 훨씬 상위 단계에서 안전이 설계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실제 현장에서는 비용 절감을 위해 설계·감리·시공이 쪼개지고 다시 외주화되면서, 누구도 실질적 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구조가 반복되었다. 이 구조는 결국 중대재해처벌법이 겨냥한 ‘경영책임자의 안전확보 의무’를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할 것인지라는 과제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단지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 이 법의 핵심은 ‘경영진이 안전을 조직의 구조로 만들었는가’를 묻는 것이다. 위험한 공정에서 필요한 안전 인력 배치, 외주 단계의 안전관리 체계 확보, 위험성 평가의 적정성 확보 등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법이 요구하는 필수 조건이다. 이번 붕괴 사고는 그 의무가 얼마나 지켜지지 않았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이 사건은 울산이라는 도시 전체에도 중요한 함의를 던진다. 울산의 산업구조는 여전히 대규모 설비 중심의 중후장대 산업이 주력이다. 이러한 산업은 공정의 노후화, 대형 설비의 해체·재건 등 고위험 작업을 지속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울산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지금과 유사한 위험을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울산이 산업도시로서 지속가능해지기 위한 해답은 명확하다. 울산은 ‘안전을 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재정의해야 한다. 안전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인식하는 새로운 산업문화가 필요하다. 울산 기업인들에게도 이번 사고는 분명한 숙제를 남겼다. ESG, 탄소중립, 디지털 전환이 시대적 화두라 하더라도, 산업 현장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 요소가 ‘안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울산과 같은 중공업 중심 도시에서는 안전이야말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절대 요소다. 단지 법을 준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고 한 번이 기업 신뢰와 지역 경제 전체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안전문화는 기업 내부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울산 산업 생태계의 안정성과 직결된다.

울산은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AI·수소·청정에너지 등 새로운 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기존 시설의 해체와 전환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즉, 울산은 앞으로도 대형 사건 사고 및 위험과 마주하게 된다. 산업도시로서 한 단계 더 성숙한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안전이 기업 내부에서 경영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지역사회에서도 안전을 도시의 핵심 가치로 인정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안전이 확보되어야 신산업도 지속될 수 있고, 시민의 신뢰 위에서만 산업도시의 미래가 확장될 수 있다. 산업도시 울산의 미래는 새로운 공장과 신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다치지 않는 도시, 기업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는 산업 생태계, 책임 있는 경영이 실천되는 지역 경제 구조 위에 세워져야 한다. 이번 사건이 그러한 변화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강성수 변호사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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