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사랑, 감사, 자유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종종 잊히는 단어가 있다. 바로 ‘존중’이다. 존중은 화려한 꽃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관계의 뿌리이자, 자기 자신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토양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삶을 무너뜨리지 않게 지탱하는 울타리 같은 힘이다.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존중은 사랑보다 더 깊은 배려다”라고 말했다. 존중은 상대를 이상화하거나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다름까지 포함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진정한 관계는 상대를 내 틀에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 자신일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허락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서 먼저 배워야 한다.
모든 인간은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것은 단순한 생존 본능이 아니라 ‘존재의 욕구’다. 사회심리학자 네이선 브룩스는 “존중받는다는 감각은 인간 존재의 중심을 세워준다”고 했다. 누군가 내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내 선택을 존중해줄 때, 우리는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내적 확신을 갖게 된다.
데시와 라이언의 자기결정이론은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과 함께 ‘존중의 경험’을 자아의 건강한 성장을 이끄는 핵심 요인으로 꼽는다. 존중은 반드시 동의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미셸 푸코는 “존중은 타인과 나의 다름을 위협이 아닌 풍요로움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라 했다.
진정한 존중은 타인을 변화시키려 들지 않고, 그 사람의 고유성을 지켜주는 일이다. 부부, 부모와 자식, 친구, 동료 사이에서도 존중이 없다면 진심은 자라기 어렵다. 존중은 공감을 낳고, 공감은 신뢰를 만든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의 말처럼, 존중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타인을 억압하거나 지배하지 않는다. 반대로 존중받지 못한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본모습을 숨긴다. 정신과 의사 존 아드리안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사랑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존중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프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성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여전히 필요한 존재인지, 내 말이 누군가에게 닿고 있는지, 내가 걸어온 시간이 의미로 남는지. 이런 감각들이 노년의 삶을 단단히 붙잡아 준다. 존중이 깃든 관계는 다투더라도 다시 회복되고, 오래된 침묵도 따뜻하게 이어진다.
아브라함 링컨은 “인간은 존중받을 때 위대해진다”고 말했다. 존중과 신뢰는 개인의 미덕을 넘어 공동체의 건강성을 결정짓는 척도다. 인사, 경청, 경계 존중, 선택권 인정과 같은 사소한 태도가 결국 관계를 살리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행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존중하라.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존중받고 있다는 감각을 놓치지 마라. 그것이 인간됨을 지키는 방식이며, 삶을 품위 있게 가꾸는 가장 본질적인 힘이다. 결국, 존중은 행복을 지켜주는 가장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감정의 언어다.
정안태 '오늘하루 행복수업' 저자·울산안전 대표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