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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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 경상일보
  • 승인 2025.12.0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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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준 변호사

수사과정에서 피의자를 변론하거나 고소인을 대리하는 경우 사건 처리가 지나치게 늦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고소장 접수후 2~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수사중이라면 문제다. 피의자나 중요 참고인이 소재불명인 경우 생길 수 있는 일이 수사중인 상태에서 발생한다면 정상이 아니다. 피해자나 고소인들로부터 신속하게 처리되도록 해 달라는 독촉을 받으면 변호인은 난감하다.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지게 된 이후 수사 지연이 더욱 심해졌다. 경찰의 송치사건이나 불송치결정에 대해 검찰은 보완수사 요구나 재수사요청을 하고, 다시 경찰은 수사해 송치하지만 또 보완수사 요구를 하는 과정이 반복되기도 한다. 경찰은 어차피 보완 수사 요구가 내려올 것이니 철저히 수사하지 않는 경향마저 있다고 한다. 사건 종결은 부지하세월이고 소위 핑퐁수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형사사건의 평균적 처리 기간이 2020년에 142.1일이었는데 수사권 조정후 점차 증가해 2024년에는 312.7일에 달했다는 통계도 있다.

형사소송법에 신속한 수사와 사건 처리에 관한 규정이 있다. 사법경찰관은 고소 또는 고발을 받은 때에 ‘신속히’ 수사해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검사에게 송부해야 하고(제238조), 검사는 고소·고발에 의해 범죄를 수사할 때에는 고소·고발을 수리한 날로부터 ‘3월이내에’ 수사를 완료해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도록(제257조) 돼 있다. 하지만 수사 현실은 규정과는 거리가 멀다.

형사부 검사들은 보완수사 요청기한(30일)을 넘기면 증거 불충분 상태에서 기소 여부를 따져야 하므로 경찰에서 송치된 기록을 최대한 빨리 검토해 부족한 게 있으면 보완 수사부터 내리는 일을 우선으로 처리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검찰에 기히 송치돼 계류중인 사건은 뒷전으로 밀리고, 3개월 내지 6개월내에 처리돼야 하는 사건이 몇년씩 떠돌게 되는 것이다.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 때문이다. 종전에는 검사가 모든 사건을 송치받아 추가 수사를 하든 안하든 책임하에 처리했다. 지금은 검사가 기소 여부만을 판단하고 수사가 미흡함에도 직접 보완수사를 잘 하지 않고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고, 경찰도 검사의 지휘를 받지 않다 보니 양 기관 모두 책임감이 덜한 것 같다.

과거에는 경찰 판단에 불복하는 피해자나 고소인은 별다른 비용을 들이지 않고 검찰의 판단을 구할 수 있었다. 사건이 송치되면 검사가 경찰 조사에서 빠진 부분을 추가 수사하거나 보완해 혐의 여부를 결정했다. 지금은 이의신청을 해야 하고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으면 기록에 잘 남지도 않는다. 검찰에 접수된 사건의 처리기간인 3개월을 넘기면 장기미제라고 해 검사별 업무실적을 평가하는 시스템도 무너진 것 같다. 검사의 보완수사권은 물론 보완수사 요구권까지 없어진다면 사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법적 절차의 신속성과 공정성은 법치의 핵심이다. 사법의 향기는 신선할수록 높고,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법언이 있다.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 불필요하게 지연되면 실질적 정의를 누릴 기회가 상실돼 제대로 된 정의가 실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재판이든 수사든 지연되면 피해자는 고통을 받는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연은 증거의 상실, 기억의 희미함, 그리고 정의 그 자체의 훼손을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수사의 지연은 범죄자 처벌의 장애는 물론 법적 불확실성을 증가시켜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와 사회질서의 유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수사지연으로 가장 크게 피해를 입는 쪽은 사회적 약자나 변호사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서민들일 것이다.

앞으로 검찰은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공소청과 행안부 소속 수사기관인 중대범죄수사청으로 분리된다. 신속한 수사를 통해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시민의 권리를 제대로 구제하기 위해서는 원리주의적 접근이 아니라 수사 지연에 대한 현장 분석과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박기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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