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청년층이 겪는 어려움은 단순한 경기 순환의 그림자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상황이다. 2025년 10월 기준 청년 고용률은 44.6%로 18개월 연속 하락했다. 같은 기간 전체 취업자는 19만명 넘게 늘었지만, 청년 취업자는 오히려 16만명 이상 감소했다. 절반 이상의 청년이 고용의 외곽지대에 머물러 있고, 구직을 완전히 포기한 청년들의 규모는 통계 작성 이래 최대 수준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자리의 ‘질’이다. 전통적인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청년층은 단순 서비스업, 플랫폼 노동 등 비정규직 중심의 불안정한 일자리에 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의 재정 확대 기조는 청년 세대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황폐화된 노동시장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기도 벅찰 지경인데, 막대한 국가부채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과정에 청년 세대의 이익을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는 대단히 미흡하다. 한국의 정치·행정 시스템은 ‘현재의 유권자’ 중심으로 작동하고, 미래세대의 목소리는 정책과정 어디에도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청년들은 정책을 주도하는 정책 행위자(actor)가 아니라 수동적인 정책의 객체(object)에 불과할 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년과 미래세대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정책결정 시스템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만한 두 가지 사례가 있다. 하나는 12~13세기에 형성돼 현재도 존재하고 있는 북미 원주민 이로쿼이(Iroquois) 연맹의 ‘7세대 원칙(seven generations principle)’이다. 이들은 수백 년 동안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오늘의 결정이 앞으로 태어날 7세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반드시 고려하는 원칙을 유지해 왔다. 7세대는 미래세대를 상징하는 개념으로서, 단순한 도덕적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족장회의나 대평의회에서 반드시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정치원칙이었다. 이는 현대 정책학에서 미래세대의 의사를 제도적으로 반영한 가장 오래된 모델로 평가되며, 오늘날에도 세대 간 정의, 지속가능한 발전, 장기적 정책설계 등에 중요한 함의를 던지고 있다.
다른 하나는 일본 지방정부에서 확산되고 있는 ‘퓨처 디자인(future design)’ 제도다. 이는 학자들의 실험에서 출발했다. 주민을 두 집단으로 나눠 한쪽은 ‘현재 주민’, 다른 한쪽은 ‘미래세대’ 역할을 맡아 동일한 정책을 논의하게 했다. 그 결과 미래세대를 대표하는 집단이 환경·재정건전성·장기투자 같은 지속가능성 항목을 훨씬 더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일본의 이와테, 교토 등 여러 지방정부가 예산편성과 도시계획 결정과정에 이를 실제로 도입했다. 츠쿠바시는 물관리, 재정운영, 도시계획 등 핵심 정책을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간의 숙의 결과에 따라 결정한다. 퓨처디자인은 미래세대를 실질적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제도라는 점에서 매우 혁신적인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미래세대나 청년들을 위한 배려는 결코 추상적 철학이나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로쿼이 연맹’이 공동체의 결정을 내릴 때 7세대 후의 사람들을 상상했던 것처럼, 우리가 오늘 선택하는 세금·복지·노동·교육 등 다양한 정책들은 앞으로 20~30년, 더 멀리는 50년 후의 한국 청년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국 현세대의 판단은 시간 속을 관통해 미래세대를 규정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청년들이 정책과정에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대폭 확대하고, 미래세대의 목소리가 구조적으로 반영되도록 정책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 청년들을 단순히 ‘정치적 상징’이나 ‘홍보용 배경’으로 취급하지 말고, 젊은 세대가 정책결정에서 실질적인 발언권과 결정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미래사회를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정준금 울산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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