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재난 위험은 더 이상 단일 대응으로 설명될 수 없다. 태풍과 침수 위험이 저지대 도심을 흔들고, 정전은 곧바로 국가산단의 화학설비를 자극한다. 자연재해가 산업재해로 이어지는 복합 위험 구조가 고착된 도시에서 ‘사후 대응’이라는 말은 이미 의미를 잃었다. 2일 열린 ‘2025 울산재난안전정책토론회’는 그 현실을 다시 확인한 자리였다.
전문가들은 울산을 ‘대표적 복합재난 취약 도시’로 규정했다. 짧은 하천이 급류처럼 바다로 빠지는 지형, 해수면과 높이 차가 크지 않은 도심, 그리고 위험물 저장탱크와 화학·에너지 설비가 높은 밀도로 붙어 있는 국가산단 구조는 재난의 연쇄 반응을 피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울산의 재난관리는 오랫동안 자연·산업·사회재난을 칸막이로 나눠 처리해 왔다. 부처와 기관마다 다른 매뉴얼에서 비롯된 정보 지연과 협업 부재는 복합재난 시대의 가장 큰 약점이다.
변화의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울산시는 ‘AI 기반 스마트 재난안전도시’를 선언하며 데이터를 통합하고 예측 모델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하천 수위, 유해가스 농도, 교통량 등 흩어진 정보를 한 플랫폼에서 실시간 분석하고, AI 기반 시뮬레이션으로 초기 대응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제안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재난 발생 시 의사결정을 총괄할 시장 직속 조직을 설치해 ‘골든타임’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은 울산의 구조적 약점을 정확히 짚는다.
재난 대응은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 참여와 전문 인력, 즉 사람의 역량이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마지막 고리다. 모바일 대피 안내, 신고 체계, 정기적인 안전훈련은 시간이 들더라도 반드시 쌓아야 할 기본이다. 복합재난 시대의 대응력은 결국 도시 전체의 학습 수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울산은 이미 2023년 UNDRR(유엔재난위험경감사무국)로부터 ‘재난복원력 중심도시’ 인증을 받았다. 그 의미는 단순한 치장에 있지 않다. 국제 기준에 맞는 위험관리 체계를 갖추라는 요구이자, 도시가 스스로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과제다. 이번 토론회는 그 기준을 울산의 현실에 맞게 구체화하는 과정이었다.
변화는 의지보다 실행력이 있어야 이뤄진다. 선언이 정책이 되고, 정책이 상시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한다. 복합재난의 그림자는 이미 도시의 일상에 들어와 있다. 울산이 진정으로 안전한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이번 논의가 일회적 행사가 아니라 재난관리 전면 재설계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시민의 생명과 도시의 산업 기반을 지키는 일에 후퇴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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