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의 생각의 窓]나의 뒷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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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원의 생각의 窓]나의 뒷모습은?
  • 경상일보
  • 승인 2025.12.0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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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

프랑스 작가 미셀 투르니에의 에세이집 <뒷모습>에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다.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한 사람이 내게로 오는 것을 보고 난 뒤에, 그가 돌아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사람의 앞모습은 꾸밀 수 있다. 하지만 뒷모습은 진심을 숨기지 못한다.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문득 나에게 조용히 묻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과연 어떤 ‘뒷모습’을 남기고 돌아섰을까?’

먼저, ‘직장인으로서의 나’. 직장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곳이다. 먼저 부하직원으로서의 나는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생각해본다. 모든 일을 책임감을 가지고 유능하게 수행하는 직원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상관에게는 조직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성과나 추진력 면에서 상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적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성실함은 재능을 이긴다”는 말처럼,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더욱 노력했어야 했는데, 그 노력이 때때로 부족하지는 않았을까 돌아보게 된다.

간부로서의 나는 더욱 다양한 평가를 마주하게 된다. 덕을 갖추고 직원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가 되고 싶었다. 직원들이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며 나를 롤모델로 삼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은 바쁜 일정 속에서 직원들의 표정을 놓치고, 그들의 어려움을 귀담아듣지 못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혹시 성과만 앞세우며 관계를 소홀히 하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는 상사로 비치지는 않았을까. 나의 뒷모습은 직원들에게 어떤 인상으로 남았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다음은, ‘사회인으로서의 나’. 사회 속에서의 나는 ‘신뢰’라는 단어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왔다. 약속을 지키고, 솔선수범하며, 타인에게 믿음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나 또한 때로는 아집이 앞서고, 내 방식이 옳다는 확신이 상대에게 부담을 준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한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서운함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타인이 느끼는 안락함 속에 숨어 있다”는 명언처럼, 과연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존재였을까를 자문하게 된다.

그리고, ‘친구로서의 나’. 친구들 앞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서고 싶었다. 이해관계 없이, 단순히 마음이 맞아서 이어진 관계이기에 더 진실하고 싶었다. 그러나 때로는 익숙함이 무례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는지, 나의 주장만 앞세우고 상대의 생각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친구는 또 다른 나의 얼굴이다”라는 말처럼, 친구가 바라본 나의 뒷모습은 내 진심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모습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로서의 나’. 아버지로서의 삶은 늘 가장 진지하고 신중하게 돌아보게 된다. 두 아들이 긍정적 사고를 가진 건강한 지성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러나 성장 시기에 때때로 엄격한 기준과 큰 기대가 그들에게 부담으로 다가간 적은 없었을까. 나의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훈육의 이름으로 표현된 것은 아니었을까. 말로는 사랑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뒷모습은 따뜻함보다 무거움으로 남겨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말보다는 뒷모습을 닮는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유산을 남기고 있을까.

독자 여러분의 뒷모습은 어떠신지요?

12월에는, 지나온 발자국을 바라보면서 내가 남긴 흔적들에 대해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으로 평가되는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사람은 자신이 남긴 자취를 보며 다시 걷는 법을 배운다”는 말처럼, 남은 기간 동안 그리고 다가올 새해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지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그리고, 내년 이맘때 다시 이 질문을 떠올렸을 때, 올해보다 덜 부끄러운 뒷모습이기를 바란다.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성숙하며, 조금 더 진심에 가까운 뒷모습으로 서 있기를 소망해 본다.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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