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미래 도시공간을 선도할 도시철도 1호선(트램)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반세기 넘게 울산의 상징으로 군림해 온 공업탑의 거취가 시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원활한 교통 흐름과 트램 노선 확보를 위해 공업탑 로타리를 회전교차로에서 평면교차로로 변경하는 것이 불가피해졌고, 이에 따라 공업탑 이전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되었다.
공업탑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가난을 벗어나고자 했던 대한민국의 의지이자, 태화강의 기적을 일군 땀방울의 상징이다. 그렇기에 역사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현재 위치에 존치하거나, 원형 그대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1967년에 세워진 이 콘크리트 구조물은 58년의 세월을 견디며 심각하게 노후화되었다. 전문가들의 정밀 진단 결과, 원형을 유지하며 이전하는 것은 붕괴 위험으로 인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이제 우리의 고민은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킬 것인가’로 전환되어야 한다.
물론, 원형을 그대로 옮기지 못하고 새로 짓는 것에 대해 ‘혼이 없는 모조품’이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일리 있는 걱정이다. 하지만 공업탑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가치는 50여 년 전의 낡고 부식된 콘크리트라는 물질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절대 빈곤을 끊어내고자 했던 불굴의 정신, 그리고 그 시대를 기억하게 하는 상징적 형상에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좋은 선례를 보여준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상징인 산 마르코 종탑은 1902년 노후화로 완전히 붕괴되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있던 모습 그대로(Com’era, Dov‘era)’라는 원칙 아래 종탑을 재건했다. 오늘날 그 누구도 다시 지어진 종탑을 가짜라 폄하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너진 역사를 시민의 손으로 다시 세웠다는 점에서 더 위대한 유산으로 칭송받는다. 폴란드 바르샤바 역사지구 역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완전히 파괴된 것을 시민들이 완벽하게 재건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보존의 핵심이 낡은 재료의 고수가 아니라, 기억의 계승과 미래에 대한 염원에 있음을 웅변한다.
울산 공업탑의 재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붕괴 위험이 있는 현재의 구조물을 억지로 옮기는 무리수를 두기보다, 현대의 첨단 기술로 완벽하게 재현하여 영구적인 새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이는 단순한 복제가 아니다. 지난 반세기의 역사를 21세기의 기술로 안전하게 담아, 우리 후손들에게 새로운 100년을 약속하는 창조적 계승이다.
이전 예정지인 울산대공원 정문광장은 공업탑의 역사적 맥락과 미래 비전이 교차하는 최적의 장소로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
첫째, 공간적 연계성이다. 이곳은 현재 공업탑이 위치한 로타리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어, 시민들이 기억하는 ‘공업탑 지역’이라는 장소성을 훼손하지 않는다. 회전교차로 한복판에서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던 공업탑이 시민들이 직접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열린 광장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둘째, 역사와 미래를 잇는 교육적 맥락의 완성이다. 이전 대상지 바로 뒤편에는 울산의 역사를 기록한 울산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 언덕 너머에는 국내 최초의 국립탄소중립전문과학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는 실로 극적인 공간 구성이다. 울산박물관에서 울산의 역사와 뿌리를 배우고, 공업탑 광장에서 대한민국 산업화의 치열했던 역사를 되새기며, 탄소중립과학관으로 발걸음을 옮겨 울산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꾸는 서사가 완성된다. 울산의 과거-현재-미래가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되는, 오직 울산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역사문화광장이 탄생하는 것이다.
공업탑은 지난 오랜 세월동안 차량으로 가득 찬 도로 너머에서 바라만 볼 수 있을 뿐, 누구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트램 도입에 따른 공업탑 이전은 이 고립을 끝낼 절호의 기회다. 바라보는 대상에서 체험하고 공유하는 공간으로, 공업탑의 존재 방식 자체가 진화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단순히 탑 하나를 옮기는 것이 아니다. 산업수도 울산의 자부심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치를 연결하는 새로운 랜드마크를 세우는 역사적 과업 앞에 서 있다. 이 광장이 진정한 울산시민의 자부심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탑을 옮겨놓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디자인 공모 등을 통해 공업탑의 상징성을 광장 전체로 확장하는 수준 높은 공간디자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다시 세우는 공업탑은 과거에 대한 추모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선언이다. 공업탑의 새로운 진화를 기대한다.
이규백 울산대학교 교수 울산공간디자인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