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Take Care of Yourself(잘 지내)
상태바
[이런생각]Take Care of Yourself(잘 지내)
  • 경상일보
  • 승인 2025.12.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장훈화 서양화가

연말이다. 벌써 크리스마스트리가 진작에 장식돼 저녁 거리는 화려하다. 그럼에도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다. 새로운 한 해라는 미래의 빈 페이지가 기다리기에, 우리는 마지막을 더 조용히 그리고 잘 정리하고 싶은 지도 모른다. 잘 마무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즈음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이터널 선샤인’이다. 사랑했던 두 사람은 헤어지면서, 상실의 상처를 견디지 못해 서로의 기억을 ‘티끌 하나 없이’ ‘기술’을 통해 지워 버린다는 설정이다. ‘마음의 영원한 햇빛’을 얻기 위해’. 그러나 기억을 삭제하는 기계가 없는 현실의 상황은 어떨까?

현대 미술은 이런 할리우드식의 ‘즉각적 해결’을 포기하는 대신, 진짜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들여다보는 방식을 택했다. 감정은 지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층위라는 점을. 이를 실험적으로 끌어낸 현대 미술가가 소피 칼 (Sophie Calle)이다. 그녀는 타인의 손에 ‘이별’을 해석하고, 분석하게 함으로써 슬픔을 이겨 냈다. 그녀의 작품 ‘Take Care of Yourself(잘 지내, 안녕)’가 그것이다.

실제로 소피 칼은 남자친구에게 “Take care of yourself”라는 문장으로 끝내는 이별 통보 이메일을 받는다. 그녀는 이 문장을 하나의 지시처럼 받아들이며, 자신의 감정을 예술적 실험으로 전환한다. 직접 답장을 쓰는 대신, 다양한 직업을 가진 107명의 여성들에게 이 메일을 보내 해석을 부탁한다. 언어 학자는 문법 구조를 분석하고, 교정자는 빨간펜으로 문장을 다시 고쳐 놓았다. 한 판사는 상대 남성의 책임 회피를 법적으로 판단한다. 또한, 심리 분석가는 그의 정중한 말투 뒤에 감춰진 조작성과 회피를 읽어낸다. 각자의 해석은 텍스트와 사진, 영상으로 기록돼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을 가득 채운 대규모 설치작업으로 완성됐다.

이 작품은 이별이라는 사적인 사건을 해석과 언어화의 과정을 거쳐 공동의 감정으로 전환한다. 이 과정 자체가 집단적 치료 행위가 됐고, 소피 칼에게는 결국 “정말 나를 돌보는 방법”을 찾는 계기가 됐다. 우리에게도 감정의 여백을 어떻게 사회적 공간으로 옮겨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인상적인 사례로 남는다.

한 해를 돌아보며, 우리는 거창한 말보다 친구와 가족이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에 더 많이 위로받는다. 소피 칼의 실험이 개인의 상처를 집단적 읽기와 해석의 장으로 확장했듯, 우리의 일상도 누군가의 말 한 줄을 함께 나누는 행위 속에서 따뜻해지기를 바래 본다. 한 해 힘들어했던 이웃, 지나치듯 스쳐 가는 굳은 표정의 타인, 마음을 다잡지 못한 채 버티던 누군가에게 건네는 짧은 안부가 필요한 마무리의 시기이다. “Take care of yourself 잘 지내”

장훈화 서양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컨테이너 이동통로 비계 붕괴, 작업자 2명 2m 아래 추락 부상
  • 김지현 간호사(울산대학교병원), 호스피스 전문자격 취득
  •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 ‘청춘 연프’ 온다
  • 울산 도시철도 혁신도시 통과노선 만든다
  • 주민 편익 vs 교통안전 확보 ‘딜레마’
  • [오늘의 운세]2025년 11월17일 (음력 9월28일·경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