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가 내년도 복지예산 1조9539억원을 편성하고, 이 가운데 4476억원을 출산·양육 지원에 배정했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이 예산이 실제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조건을 얼마나 바꿔내느냐다.
시가 내놓은 사업들을 보면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과 산모·신생아 재가돌봄 본인부담금 환급, 임산부 바우처 택시 지원이 임신·출산 초기의 의료·이동 비용을 덜어준다. 다태아 안심보험과 어린이집 급·간식비·운영비 인상, 저소득 아동 급식 단가 인상, 아동수당 확대 등은 영유아기와 아동기의 돌봄 여건을 강화하는 조치다. 여기에 디딤씨앗통장과 같은 장기 자립 지원책이 더해져 단계별 지원 구조를 갖춰가고 있다.
돌봄 인프라 확충도 눈에 띈다. 광역시 최초 24시간 연중무휴 ‘울산시립아이돌봄센터’는 개소 이후 6800여건의 긴급 돌봄을 제공했고, 내년에는 송정·범서센터가 추가된다. 영유아 부모를 위한 ‘유(U)-맘스 수면 휴게쉼터’, 부모커뮤니티센터, 장난감·유아옷 나눔가게, 이웃애·늘곁애 돌봄사업 등은 양육의 고립감을 덜고, 마을이 함께 아이를 키우는 기반을 넓히려는 시도다.
방향과 설계만 놓고 보면, 보편성과 촘촘함을 동시에 지향한 사례라 할 만하다.
그러나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지속 가능성이다. 24시간 돌봄센터, 쉼터, 커뮤니티센터, 자조모임형 돌봄은 시설과 사람이 있어야 돌아간다. 돌봄 노동의 처우 개선과 인력 확보 계획이 뒷받침돼야 한다. 다음으로, 형평성과 접근성 문제다. 일부 사업은 소득기준, 또 다른 사업은 지역·시설 이용 여부에 따라 혜택이 갈린다. 부모 입장에서 ‘어디에 살고, 어디를 이용하느냐’에 따라 지원 체감도가 크게 달라지는 구조는 보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저출생은 보육정책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장시간 노동과 불안정한 일자리, 높은 주거비, 성평등한 돌봄 분담의 부재가 그대로인 한, 보육 예산 증액은 ‘부담 완화’ 이상의 효과를 내기 어렵다. 울산형 통합 돌봄 체계가 자리 잡으려면, 지역 산업구조와 노동시장, 주거정책, 성평등 정책과 함께 설계되는 광역적 인구 전략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4476억원은 적지 않은 돈이다. 이 예산이 또 하나의 ‘출산장려 패키지’로 소비되지 않으려면, 이용자 경험을 기반으로 성과를 점검하고 정책을 조정하는 피드백 구조가 필요하다. 아이와 부모의 일상에서 체감되는 변화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울산의 복지예산은 지출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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