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6장 / 불패의 달령 전투(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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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6장 / 불패의 달령 전투(92)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5.12.08 0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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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여기서 뭐하시는 겁니까?”

“나, 이 무덤의 주인이 불쌍해서 가끔 이곳을 지나갈 때는 이렇게 앉아서 한참을 있다가 간다우. 내가 좀 이상해 보이지?”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할머니, 이 무덤의 주인을 아세요?”

“알다마다. 내가 만들어 준 건데….”

“혹시 이 무덤의 주인에 대해서 여쭈어 봐도 될까요?”

“나도 자세히는 몰라.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키가 아담한 양반댁 부인 같았어. 난리 통이라서 장사지낼 돈이 없었는지 몰라도 누군가 그냥 내다 버렸어. 웬만하면 조그마한 봉분이라도 만들어주지. 몹쓸 사람들 같으니라고. 참 손에 낀 옥반지는 빼지 않은 상태였는데 특이하게도 일반 가락지와는 다르게 붉은색이 강한 그런 옥가락지였지. 그게 잊히지가 않네. 짐승들이 좀 뜯어먹다가 만 상태라서 나도 좀 무서웠지만 눈 딱 감고 작게나마 봉분을 만들어 준 거야. 늙은이가 이거 만드느라 고생을 좀 하기는 했지만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잘한 거 맞지?”

“네, 할머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만드느라 고생하셨는데 이거 받으세요. 얼마 안 돼요.”

천동은 엽전 한 냥을 할머니의 손에 쥐어 드렸다.

“총각이 나한테 왜 이렇게 많은 돈을 줘? 무덤 주인하고 무슨 관계라도 있는 거유?”

“네, 조그마한 인연이 있습니다. 할머니, 제가 여기서 조금 있다가 가고 싶은데 자리 좀 비켜주시겠어요?”

“그래, 알았어.”

노파가 가고 나자 천동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이 무덤의 주인은 더 알아보지 않아도 옥화 누이가 분명했다. 그녀는 한 번도 지아비가 사 준 옥가락지를 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옥가락지 특유의 푸른색이 나는 상품의 반지가 아니라 붉은빛이 감도는 최하품이기에 아무도 그런 질 낮은 옥으로 가락지를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옥가락지가 된 것이다.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누이가 죽어서 무덤에도 못 들어가고 시신이 버려졌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천동은 사람들을 사서 누이의 무덤을 제대로 만들어 주고 비석과 상석도 만들 생각이다. 비록 살아서의 인연은 신분의 차이 때문에 더 이상 이어가지 못했지만 죽은 누이의 무덤만큼은 자신의 부인처럼 만들어서 그녀와 못다 이룬 인연의 한을 풀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찌된 것이지 연유는 알아야 하겠기에 천동은 김 초시 댁으로 찾아갔다. 마침 김 초시는 출타 중이었고 하인인 꺽쇠만 있었다. 그는 꺽쇠에게 엽전을 두둑하게 쥐어주고 누이가 왜 어떻게 죽었는지를 소상하게 물었다. 하인으로부터 그간의 얘기를 소상히 들은 천동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잡놈의 새끼!”

언젠가는 반드시 김 초시가 한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혼례를 약속한 옥화도 있고 해서, 천동은 신중하게 그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천동은 바쁘게 움직였다. 인부들을 동원하고 묘를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와 물자를 준비한 후에 지관을 불러서 묏자리를 보고 서둘러 이장을 했다. 천동은 석물 대신 나무로 만든 형상들을 세우고 비석 대신 임시로 비목을 세웠다. 비목에는 ‘우시산국 웅촌박씨 국화지묘’라고 썼다.

무덤의 주인에게 술 한 잔 올리고는 배례를 했다. 꾹꾹 눌러왔던 슬픔이 폭발하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목울대를 타고 넘어오는 슬픔이 가슴을 적셨다.

“누이!”

천동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으로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무덤의 이장을 마친 천동은 인근에서 말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김 초시의 악행에 대해서 소문을 퍼트렸고, 소문은 바람처럼 울산 전역으로 번져갔다.



글 : 지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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