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春風秋霜(춘풍추상)과 觚不觚(고불고), 다시 원칙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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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春風秋霜(춘풍추상)과 觚不觚(고불고), 다시 원칙을 생각하며
  • 경상일보
  • 승인 2025.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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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재희 CK치과병원 원장

탄핵정국의 진통을 넘어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 년이 지났지만 정치의 온도는 여전히 차갑다. 권력 지형이 뒤바뀌었음에도 여야는 상대를 향한 비방을 멈추지 않고, 국회는 협치보다 대치가 익숙한 공간으로 남아 있다. 탄핵이라는 극적인 정치적 심판을 거친 뒤 국민이 기다린 것은 ‘새로운 정치’였지만, 실제로 마주한 일상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당은 전임 정부의 국정농단을 강하게 비판하며 도덕성 회복과 시스템적 정치를 약속했으나 출범 이후 인사검증 실패, 인사청탁 논란, 성비위 사건에 대한 편향된 대응 등으로 원칙의 일관성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스로 강조한 기준을 스스로 어긋나게 적용하여 국민의 기대를 실망으로, 실망을 냉소로 번지게 한다. 여기서 과거의 부정적 유산을 넘겠다던 약속이 여전히 유효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야당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정을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위치이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보여준 행보는 대안정당이라기보다 반대를 위한 반대에 가깝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정의 혼란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략적 계산을 넘어서는 정책 경쟁과 협치의 자세인데, 여전히 공세와 비난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권력의 중심에서는 벗어났지만 책임정치의 기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러한 현실을 돌아볼 때 되새겨야 할 고사가 있다. 바로 춘풍추상(春風秋霜)이다. 타인을 대할 적에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하고, 자기를 수양할 때는 원칙과 기준에서 가을 서리처럼 엄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정치권 전체에 적용될 뿐 아니라, 특히 권력을 가진 쪽에게 더 엄격하게 요구되는 기준이다. 봄바람의 너그러움만 남고 가을 서리의 단호함을 잃는다면, 정치의 도덕적 기반은 쉽게 무너진다.

공자가 남긴 말 ‘고불고 고재고재(觚不觚 觚哉觚哉)’ 역시, 지금의 정치가 곱씹어야 할 구절이다. 사물이 그 본래 모습과 역할을 잃으면 이미 그것을 사물이라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정치는 공동체의 갈등을 조정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공적 행위이다. 하지만 정쟁과 내로남불이 일상이 되고 책임 회피가 반복된다면, 더 이상 그것을 온전한 ‘정치’라 부를 수 있을까? 이름만 정치이고 실질은 감정적 대립과 권력투쟁에 머무른다면, 바로 ‘觚不觚’의 상태일 것이다.

원칙이 사라진 정치에서는 사건의 성격보다 당리당략이 우선하고, 동일한 사안도 진영에 따라 전혀 다른 잣대가 적용된다. 성비위나 인사비리 문제는 어느 편이냐에 따라 비난의 강도가 달라지고, 과거 자신들이 외쳤던 기준은 현재의 정치적 필요 앞에서 손쉽게 흔들린다면, 국민은 정치적 메시지를 믿기보다 그 속에 숨은 계산을 먼저 의심하게 된다.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국정 전반은 활력을 잃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악순환을 끊는 열쇠는 정치의 본령을 회복하는 데 있다. 말의 강도보다 행동의 일관성이 중요하고, 상대를 겨누는 비난보다 자기 성찰이 우선해야 한다. 정치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원칙과 책임, 그리고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엄격함이다. 봄바람처럼 상대를 예우하되, 자신에게는 서릿발처럼 단호하게, 그러나 언제나 한결같은 기준을 견지하는 것이 오늘의 정치가 되돌아가야 할 출발점이다. 여야가 서로의 약점을 찾아 비난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면, 이제는 스스로의 모습을 비춰볼 차례다. 공동체를 이끄는 자리에서 ‘觚不觚’의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각자가 맡은 이름과 역할을 다시 정의하고 지켜야 한다.

탄핵이라는 큰 변화를 겪은 사회가 다시 분열과 반복된 실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의 최소한의 신뢰가 복원되어야 한다. 신뢰는 말이 아니라 실천에서 나온다. 원칙 앞에서는 진영도, 유불리도, 감정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春風秋霜의 정신을 되살리고, 정치가 정치답게 기능해야 할 때다. 그렇게 할 때만이 정치가 다시 ‘觚哉觚哉’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손재희 CK치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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