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내의 초록지문(24)]울산대공원에서 길을 잃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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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내의 초록지문(24)]울산대공원에서 길을 잃는다면
  • 경상일보
  • 승인 2025.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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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공원은 맑고 투명하다. 시리도록 쨍한 하늘 아래 햇살이 유독 선명하다. 여름 내내 초록을 자랑하던 나무들은 입었던 옷을 내려놓았다. 날카로운 바람에 떠밀린 잎들은 공중에서 빛을 흩뿌린다. 12월은 돌아보는 시간이다.

울산대공원은 울산시가 부지를 매입하고 SK가 시설을 조성해 무상으로 기부한 곳이다. 면적이 약 110만평으로 공원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미국 뉴욕의 센트럴 파크보다 크다. 여기서 잠시 길을 잃는다면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해 볼 일이다.

이곳은 시설을 제외한 대부분이 자연 그대로의 숲과 호수로 이루어져 있다. 덕분에 사라져가는 생태적 가치를 보존하는 것과 더불어 울산 시민의 초록 심장 역할을 한다. 발에 닿는 땅의 언어를 읽으며 걷다 보니 메타세쿼이아 숲길이다. 곧게 뻗은 나무에 지난여름의 무성함이, 가을의 풍요가, 초겨울의 쓸쓸함이 담겨있다.

▲ 울산대공원 메타세쿼이아숲.
▲ 울산대공원 메타세쿼이아숲.

공원의 깊이는, 어쩌면 길이 정하는 것이 아닐까. 만나고 스치고 닿고 헤어지는 순간이 쌓여 우리라는 공동체가 만들어지듯, 모세혈관처럼 이어진 길에 퇴적된 이야기가 깊이를 만들었을 것이다. 속도를 조절하며 걷다 보면 자꾸만 길을 잃는다. 덕분에 나의 서사와 정면으로 마주본다.

길을 놓친다는 건 잠시 숨고르기가 필요하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 빠른 것만 찾아다니던 삶의 리듬을 조정하는 시간이다. 낯선 감각이 외부에서 답을 찾던 습관을 돌아보게 만든다. 타인의 시선과 불필요한 경쟁 속에서 너무 오래 머문 것은 아닐까. 정답은 언제나 안쪽에 있었을 텐데, 왜 그토록 바깥에서만 찾으려 했는지. 비교하고 자책하고 자학하고. 일상의 소요가 가라앉은 공원에서 마주한 낯선 나는, 오래 사랑해도 모자라지 않을 모습이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공원에 가 볼 일이다. 그곳에서 길을 잃는다면, 재촉하지 말아야 한다. 숲이 나뭇잎을 흔들어 알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볼 일이다. 내 안에서 휘몰아치던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릴 일이다. 고요 속에서 새 길이 보일 때까지.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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